도대체 샤브 샤브라는 메뉴는 무엇일까? 이름만 들어서는 일본식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과거 몽골식 요리가 중국으로 전해지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탄생한 이름이란다. 고기나 해물을 우려낸 국물에 고기나 야채를 살짝 데치듯 익혀 먹는 요리로 전투중인 몽골군인들이 바쁜 식사 시간을 절약하고 영양도 보충하겠다는 의미에서 시작했단다. 생각해 보면 몽골군은 육포처럼 말린 고기를 전투식량으로 많이 사용했다. 말린 고기는 부피를 줄이고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는 장점이 있지만 먹기엔 딱딱하고 식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고기 국물에 말린 고기를 한 번 데쳐 제대로 된 맛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이날 간 곳은 천안시의 샤브 샤브 전문점이다. 이름은 메밀밭 샤브칼국수 라는 곳으로 상호에 이집의 음식이 다 드러나 있다. 메밀을 사용하는 면을 주고, 샤브 샤브를 즐기면서 칼국수로 먹는 집이란 뜻이다. 요즘 샤브 샤브는 샤브 올데이 같은 대형 체인점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좋다. 특히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영양도 많고, 담백하고, 다양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반적인 샤브 샤브 전문점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바쁘게 돌아 다녀야 한다. 다양한 먹을 거리를 자신의 테이블로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은 달랐다. 손님들이 가지고 오는 식재료는 아주 한정적이고 대부분의 먹을거리는 종업원이 가지고 온다. 거기에 파전 비슷한 야채전도 나오고, 죽도 나오고, 칼국수 면까지 다 나와 있다. 순서고 뭐고 없이 그냥 막 때려 먹어도 되지만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 우리는 종업원이 알려준대로 순서에 입각하여 먹기 시작했다. 먼저 훠궈처럼 둘로 나뉘어진 솥에서 보기만 해도 알 것 같은 매운 국물과 담백한 국물이 있고 거기에 취향에 맞게 야채며 얇게 자른 고기를 넣어 휘휘 저어 정말 살짝만 익혀 먹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샤브 샤브 아니던가...
우리가 간 날이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몰라도 살짝 익힌 즉, 숙회로 만든 문어를 적지 않게 내어 주었다. 이런~ 문어 숙회가 요즘 이상할 정도로 저렴하다. 갑자기 문어가 잘 잡히는 것일까? 아무튼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고급진 먹을 거리를 주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몸값이 비싸도 사람들이 문어를 찾는 이유를 여기서 다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식감이나 맛이 따라 갈수가 없다. 한낮에 먹는 점심이지만 그저 소주 생각이 간절했다. 이렇게 좋은 안주를 그냥 입안으로 보내는 것은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닐진대...
문어와 얇게 자른 소고기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맛은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난단 말인가? 원래 문어의 식감은 깡패나 다름이 없다. 점심에 이렇게 한 끼로 간단하게 먹어 치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런 맛이었다. 나만 그런가... 야채와 함께 이렇게나 푸짐하게 먹는데도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천안쪽이 전체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편일까? 처음엔 샤브 샤브의 가벼움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먹다 보니 절대 가볍지 않은 묵직함이 있었다. 우리처럼 이곳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꽤나 많았다. 다소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손님들은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브 샤브의 하일라이트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야채와 고기, 그리고 문어로 만들어진 진한 국물에 이집의 이름처럼 메밀로 만든 칼국수를 넣어 끓이는 것이다. 생면이라 익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한 10분 정도 끓여주면 눅진한 국물을 한껏 머금은 칼국수가 완성된다. 메밀이 들어 있어 다소 검은 빛을 띄는 면은 다른 집들과 분명 차별있는 비주얼이었다. 면이 너무 많다고 한사코 마다하던 사람들도 한 두 젖가락 면을 먹다보면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그릇 가득 면을 담고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신기한 곳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또 다시 육수를 추가하면서 넣은 것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죽이다. 처음엔 철저하게 외면받던 죽용 쌀과 야채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진한 국물에서 만들어지는 죽이 맛이 없을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먹으면 다이어트와는 영영 이별이 되는 어쩌면 잔인한 집이다. 간단히 먹자던 점심은 1시간 이상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허리띠 풀고 무장해제되어 먹었다. 정말 대단한 곳이다. 양이 적다, 많다 하던 처음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두들 과식을 하게 되는 참으로 경계해야 할 집이다. 하지만 밀려오는 만족감과 포만감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