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김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아는 김밥은 참기름 윤기가 흐르는 밥에 소시지와 시금치, 단무지 등이 들어간 반찬이 필요없는 요리같은 것이다. 하지만 충무김밥은 이런 김밥의 기준에서 본다면 너무나 단촐한 것이다. 참기름은 커녕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맨밥을 김에 싸고, 김밥 속에는 아무런 재료도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반찬으로 석박지나 오뎅, 또는 볶은 김치를 함께 주는 것으로 끝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김에 밥을 싼 것이고, 우리가 흔히 먹는 김밥과는 결이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충무김밥은 바쁜 어부들을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에서 나온 생활의 지혜이다. 단순히 맛으로만 판단하기는 어려운 역사이다.




우리는 자갈치 시장 근처에 있는 이집에서 정통의 충무김밥을 맛볼 수 있었다. 이름은 '삼형제 충무김밥'이다. 김밥천국 같은 체인점 인줄 알고 들어갔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에 갔었던 허름한 통영의 충무김밥 집들과는 확연히 다른 깔끔하고 고급진 분위기의 충무김밥 집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어부의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먹을 때를 놓치는 바람에 늘 상했었단다. 그래서 어부의 아내는 상하지 않을 단촐한 김밥을 싸고, 대신 간이 없는 김밥에 반찬으로 석박지 같은 것을 함께 넣어 주었단다. 그것이 충무김밥이다. 개인적으로 충무 김밥을 무척 좋아한다. 담백하고, 단촐한 맛을 즐기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11,000원 짜리 충무 우동세트를 주문했다. 이러면 김밥과 우동이 함께 나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렇게 둘 다 세트로 주문하는 것보다 한 사람은 세트를, 한 사람은 그냥 충무김밥을 주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무튼 우리는 선 무당이 사람 잡는 격으로 이렇게 주문했다. 충무김밥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말아 준다. 사실 말이 김밥이지 엄청 뻑뻑하다. 그냥 물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음식에 자꾸 젖가락이 간다. 그리고 먹고 난 후에도 텁텁함이 없다. 개운하다. 잘 익은 석박지를 힘께 먹는 맛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집으로 계속 손님들이 들어왔다.



우동이 어찌나 뜨겁던지 입천정 다 데일 뻔 했다. 하지만 정통의 맛이었다. 진한 국물의 우동과 충무김밥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하지만 우리처럼 두 사람이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은 없었다. 역시 현지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주문해야 잘 먹는 것인지 말이다. 충무김밥 외에는 별다른 메뉴가 없는 집이지만 손님들이 희안할 정도로 계속 들어 왔다. 그것도 손님의 90% 이상이 여자들이었다. 충무김밥처럼 담백한 음식을 여자들이 좋아했던가? 내륙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평소엔 충무김밥을 먹을 일이 거의 없다. 현지에 왔으니 연례행사처럼 먹는다. 하지만 아마도 부산에서는 이것이 주식처럼 먹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먹다 보니 우동보다 충무김밥을 더 주문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실 세트가 아니라면 충무김밥이 이보다 두 배는 더 나온다. '아 그랬어야 하는데...' 뻑뻑하고 아무런 간이 안 된 김밥이 주는 담백함의 묘미는 대단한 것이다. 어떤 반찬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유연함의 극치라 하겠다. 물론 김의 품질도 중요할 것이다. 부산 여행에서 이렇게 현지인들의 식사에 최적화된 음식은 먹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자갈치 시장의 짭짤한 맛처럼 충무김밥의 뻑뻑한 맛이 부산의 정서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경험이라 하지 않던가... 이번에도 역시 부산의 맛난 충무김밥이 그런 묘미를 선사해 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