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도심의 환경정비 사업으로 벽화를 그리는 지역이 많다. 미관상 보기 싫던 거리는 벽화로 완전히 다른 지역이 되기도 한다. 벽화의 소재는 다양하다. 벽화로 유명한 통영의 동피랑 마을의 경우도 원래는 오래된 달동네 이미지였지만 벽화를 통해 패션의 거리로 탈바꿈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동피랑 마을은 산 전체를 벽화로 만든 대규모 도시재생사업으로 예산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꽤나 걸린 사업이었다. 하지만 그런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좋은 아이디어로 벽화를 그린다면 얼마든지 구도심을 예쁘고, 새롭게 만들 수 있다.
우연히 포천동 행정복지센터 앞의 골목길을 가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막걸리 벽화를 보게 되었다. 그림도 많지 않고, 벽화 길이도 짧은 편이지만, 벽화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과거 막걸리를 많이 먹었던 포천 사람들의 삶을 간단하지만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그림이었다. 포천만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예전의 포천 사람들은 막걸리를 참 즐겨 마셨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인 신읍3리 부근은 아예 동네 이름이 ‘포천막걸리’를 줄인 ‘포막’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시절엔 막걸리를 제대로 된 포장용기에 담아 마트 같은 큰 유통망에서 파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만들기도 했고, 공장에서 많은 양의 막걸리를 사다 땅에 묻어둔 큰 항아리에 넣고 적은 양을 소분하여 팔았다. 손님들은 막걸리를 사려면 자신의 막걸리를 담아갈 주전자나 그릇을 가지고 가야 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어른들의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옆구리가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가서 ‘막걸리 한 말 주세요~’ 이러면 주인 할머니가 됫박 같은 국자로 막걸리를 퍼서 주전자 가득 담아주었다. 막걸리 값이 얼마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집으로 가다 보면 너무 무거워 한 번에 가지 못하고 중간에 쉬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들기에 너무 무거웠기에 흔들흔들 제대로 주전자를 들지 못해 막걸리가 신문지로 막아놓은 주둥이로 흘러넘쳤다. 짜증도 나고 힘도 들어 집으로 가는 길에 조금씩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마시기도 했다. 힘들고 목 탈때 조금씩 마시는 막걸리는 어찌나 달큰하니 시원하던지 그 맛이 지금도 아련하다. 하지만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녀석이 막걸리를 홀짝거리며 가다 보면 집에 갈 무렵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르게 된다. 술에 취한 것이다. 심부름을 시킨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너 또 막걸리 몰래 먹었지?” 하면서 야단을 치셨지만, 취기가 오른 탓에 그냥 방에 들어가 눕곤 했다. 어린 시절의 술주정인셈이다.
포천동의 벽화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그 예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마 비슷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포천에는 많을 것이다. 사실 포천은 지금도 막걸리의 고장이다. 전국의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막걸리 공장을 보유한 지역이라 하니 말해서 무엇하랴... 이동면에서 비슷한 벽화를 민군이 함께 그렸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포천동의 벽화도 좀 더 크게 넓게 만들면 어떨까 싶다. 그 벽화가 포천의 명물이 되고, 그래서 지역도 살고, 홍보도 되고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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