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 어룡동에 효자 오백주가 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었다. 오백주라는 말이 오래된 나무를 말하는 줄 알았다. 효자라는 별칭이 있어 전설에 고향에 나오는 “효자가 이런 저런 사연으로 나무가 되어 이곳에 있다~” 라는 곳인줄 알았다. 참으로 무식한 생각이었다.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말로만 듣던 오백주 정문을 가보게 되면서 이런 몰상식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작업을 한다는 말을 듣고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효자 오백주는 사람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조선 효정 때인 1659년 23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한 오백주라는 인물은 포천 어룡동 태생의 무관이었다. 무과 급제 후 귀성도호부사와 귀성진의 병마첨절제사의 관직에 오르기도 했다. 병마첨절제사는 종3품 무관의 직분이었다. 병마첨절제사라는 직은 육군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육군의 무관으로 근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공직 생활 내내 청렴결백하고 강직했다고 한다. 오백주가 효자라는 이름은 얻게 된 것은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성으로 기도하였고, 산삼과 꿀을 구해 부친의 병을 낫게 했다는 미담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이런 오백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어룡동 347-3의 위치에 정문을 하사했다. 현재는 1993년 신축한 오씨 종중의 사당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오백주 정문은 도로에서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구한말 동네 입구로 옮겨 개축하였지만, 다시 1993년 본래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오백주 정문은 1986년 4월 향토유적 제3호 지정되었으며 외형은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나라에서 내린 정문에는 외문을 달거나 담장을 두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형식이나 오백주 정문에는 예외적으로 외문이 설치되었고 담장도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사당이 나온다. 사당 옆으로는 함께 자리하고 있는 오백주의 증손 오수진과 그의 부인 인천 이씨의 효자 열녀 정문 그리고 오몽량과 그의 처인 문화 유씨의 정문도 있다.
어설픈 한자 실력으로 효자문과 열녀문을 읽어 보니 대충 좋은 내용이다. 뭐 나라에서 내렸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기 때문에 관광지처럼 웃고 떠들고 하는 장소는 아니다. 그렇지만 숙연하게 선현들의 정신을 기려볼 수 있는 좋은 곳임에는 틀림없다. 오백주 정문을 보면서 가만히 살펴 보면 포천에는 참 의미있는 역사적 장소가 정말 많다는 것을 이번에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소소하게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뭉개구름처럼 포실포실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으로 추억을 먹는다. (0) | 2024.11.17 |
---|---|
포천동의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막걸리를 그린 정감있는 벽화 (2) | 2024.11.01 |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길목에서 만난 가산면 우금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경 (2) | 2024.10.09 |
이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윤리경영을 통한 발전을 도모한다. 좋은 날 좋은 삼겹살로 든든하게 채운 점심식사! (0) | 2024.10.04 |
수도권 최고 인기 주말 여행지가 된 포천 한탄강 페스타 행사장 (2) | 2024.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