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는 ‘IMF 경제위기!’ IMF는 그렇게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이라 불리는 이 기구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후 맞이하게 될 세계 경제의 질서 개편을 위해 미국의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정하는 회의였던 브래튼우드 협정에서 탄생했다.
총 189개국으로 구성된 이 조직은, 국제통화협력을 육성하고, 각국의 재정 상황을 안정시키며, 국제무역을 촉진시켜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며, 높은 취업률 구현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진행하며, 세계에서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다만, 북한과 쿠바, 안도라,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투발루, 나우루는 IMF에 가입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는 IMF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많은 경제 정책에 관여하였고, 특히 공기업과 대기업이 대거 외국 자본에 넘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비정한 존재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IMF의 구제 금융을 받은 세계 여러 나라 중 가장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모범사례로 남았다. 그렇지만 지금도 당시의 호된 기억 때문에 거시경제 정책에서 외환을 얼마나 보유하는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을 만큼 뼈저린 상처를 남겼다.
IMF의 주요 업무 중에 하나인 빈부격차는 본 저서에서 언급한 대로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인 오히려 더 악화되었고, 소득불평등 역시 점차 심화되고 있다. 기존 IMF의 정책적인 기조와 달리 각국 정부의 견실한 성장과 적정한 재정지출을 통한 세계경제 안정이 오히려 글로벌화를 촉진하면서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화가 진행된 1990년 이후 세계적으로 불평등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1장 옥스팜의 2014년 통계자료는 놀라운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전 세계 상위 85명의 부자가 하위 인구 절반 이상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화되어 사회 문제가 되기 이전에는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소득 불균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겐 평균소득의 증가가 더 큰 관심거리였고, 분배는 그 다음 문제로 치부되었다. 또한 저소득층에게 현금 이전이나 복지혜택을 주는 등의 강제적 재분배는 경제 성장 의욕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경제 성장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본서의 연구를 통해 지나치게 과도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면 경제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의 재분배가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 성장을 가지고 올 수 있다.
본서는 전체적으로 연구논문과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누구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IMF에 속한 주요 경제학자들의 자료를 통한 객관적인 시각과 결론을 지향하고 있다. 각 장은 IMF가 그동안 분석한 자료들을 통해 경제정책이나 시장개방, 무역개방, 금융자유화 등이 그 나라의 경제성장 그리고 불평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특별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자료상 수치들이 불평등을 심화 시킨 경우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 구조가 취약해지고, 경제성장은 둔화되며, 정치적으로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소득의 불평등이 발생하며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일까? 본서에서 거론한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크게 본다면 노동소득, 즉 근로자들의 실질소득과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본서에서도 거론한 것처럼 과거 경제학자들은 노동 생산성을 강조했다. 노동자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커진 것이 노동소득 불평등의 이유라는 것이다. 숙련된 기술자와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자의 생산성은 크게 상승했지만, 그렇지 못한 계층은 더 많이 하락했다. 노동시장에서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임금도 늘었다. 또한 무역개방으로 교역이 확대되면서 저개발국가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선진국의 저숙련 노동의 임금은 압력을 받게 되었다. 현실의 임금결정에서는 생산성 외에도 제도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노동시장의 수급상황과 정부규제, 그리고 노동조합이다. 2000년 대 이후 이런 노동환경도 자본가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대기업들의 아웃소싱과 정리해고가 확산되고, 성장 동력이 약화되면서 고용시장 상황이 악화되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명제 하에 규제완화가 이루어지면서 집단해고와 간접고용이 만연하게 되었다. 본서에서는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낮고 자본과 정부의 공격적인 태도에 밀려 교섭력이 저하되었다고 판단했다. 피케티(Thomas Piketty)는 협상력의 결정에 사회적 규범이나 정치적 분위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상위 1%로의 소득집중 현상을 발견하고, 이들은 대체로 대기업의 최고경영진이라고 말했다.
자본소득은 노동소득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자본소득의 원천이 되는 순 자산의 분배는 소득분배보다 훨씬 불평등하다. 본서에도 나타난 사실이지만 전체 가구 순 자산의 지니계수는 경제가 개방되고, 세계화가 진전 될수록, 자본이 자유화되고, 제도가 개선 될수록 더욱 나빠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처분소득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의 29.1%를 차지한 반면, 순자산은 상위 10%가 전체의 43.7%를 차지한다. 근래에는 자본소득분배율이 상승하고 있다. 임금 상승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했고, 특히 2008년 이후에는 그 괴리가 극단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그 결과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 즉 노동소득분배율은 하락했다. 이는 곧 자본소득분배율의 상승을 의미한다. 본서에서 주요한 지표로 지목했던 이 지표는 IMF가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IMF는 노동소득분배율의 지속적 하락추세를 확인하였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제도적으로 이런 불균형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유명한 존 라이시는 본인의 저서 ‘자본주의를 구하라’에서 부와 소득을 독점한 상위 1%가 경제와 정부를 장악하고, 소위 갑질을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또한 대기업과 거대 은행, 자본가들의 부의 독점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럼으로 인해 중산층의 소득이 실질적으로 줄어들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했다. 라이시의 주장대로 미국의 중산층 실질소득은 본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자본가와 CEO 같은 상위 소득자들에 비해 아주 미미한 수준의 증가만을 보이고 있고, 이는 미국 GDP의 70%에 해당하는 개인소비지출 위협하고 있다. 즉, 부자나 중산층이나 하루에 먹는 음식의 양은 비슷하고, 입을 수 있는 옷도 크게 차이가 없다. 자동차나 기타 소비재들을 구입하는 것도 양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중산층의 소득이 축소되면서 전체 소비규모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지출의 감소는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키고, 실업을 증가시키며, 다시 중산층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키게 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강신욱 외 9인 저서인 ‘소득불평등 해소의 길’을 보면 근로연령대 취업 가구주의 노동소득 불평등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가구소득 불평등에서 근로소득 불평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분배정책의 전환 없이는 소득불평등을 억제하기 힘들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소득불평등의 증가요인으로 노동소득, 고용률, 노인인구 비율,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재산소득, 재분배정책 등을 거론하면서 소득불평등을 해소에 고용률 증가정책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으며,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저소득 근로자들의 일자리 창출은 실질 소득 증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오히려 감소하여 소득불균형이 더 커진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들의 구매력이 향상되지 못해 전체 경제주체들의 매출감소로 이어지면서, 기업의 채산성 악화, 해고 등으로 불균형이 더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고 본 것이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서에서도 결론으로 포용적 성장의 촉구를 강조하고 있다. 과거 전체 파이가 커져야 저소득층도 가지고 갈 몫이 있다고 생각했던 경제학자들의 주장보다 이젠 분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덜 가지고 있는 계층과 나라, 지역에 대하여 포용적으로 베풀어야 한다는 의견인 것이다. 이런 정책적 결론을 내린 이유는 자본주의 전체 경제 질서가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근간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그리스로부터 시작되었던 유로존의 금융위기에서 보았듯 한 나라의 경제 불안은 즉각적으로 이웃나라와 해당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즉,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볼 때 경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소국이지만,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나라들은 유럽 전체나 마찬가지이고, 그리스가 돈 갚을 능력이 없어지면 이들 역시 부실 채권이 늘게 되어 어렵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제 그리스의 위기 상황 하에서 이태리와 스페인 역시 경제적으로 매우 위기 상황까지 갔으며 프랑스와 독일마저 영향을 받게 되었다. 블록화와 세계화로 인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는 한 나라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사전 분배와 재분배 같은 분배 논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한 나라만 놓고 생각할 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저소득층의 빈곤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고, 이들의 구매력 하락은 전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비록 교육비를 내지 못할 정도의 저소득층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보다 나은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비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이다. 저개발 국가의 낮은 구매력과 경제력은 결국 그 나라 국민들의 낮은 구매력과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들의 경제력이 향상된다면 전 세계적인 경제규모 역시 커질 것이다. 따라서 OECD 같은 잘 사는 나라들이 저개발국가에 적극적인 사회 인프라와 교육, 환경 등을 위해 포용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본 저서는 이전에는 보기 드물게 세계 경제기구에서 성장이 아닌 분배와 소득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서방 경제 선진국으로 대변되는 세계기구는 늘 전체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와 세계 경제에 불안 요소를 미리 막고 없애는 일에 노력을 경주했다. 그래서 때론 일부 서방 국가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 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IMF로 인해 오히려 더 경제 상황이 악화되기도 했다. 그런 IMF의 입장에서 봐도 분배문제와 소득불평등 문제는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문제는 앞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들은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조금 성장하다, 후퇴하는 사이클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 문제의 원인이 소득불평등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원인인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본서에서는 기존 정책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책에 포용적 성장 정책을 다시 넣어 설계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구체적인 제시로 노동자들의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 강화를 들고 있다. 앞서 살펴 본 노동조합의 쇠락은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각국은 지금보다 더 포용적인 고용서비스 강화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리고 근로자들의 직업훈련을 위해 과감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숙련 노동자의 임금과 그렇지 않은 근로자의 임금을 생각하면 국가적으로도 숙련 임금노동자가 많아 질 경우 세수도 늘 수 있다.
금융부분에서의 포용정책도 강조하고 있다. 저개발국가들은 소득이 낮은 국민 중 상당수가 은행을 이용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부 자본가를 제외하면 일반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는 매우 제한적이다. 금융부분에서 접근성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쉽게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을 이용을 통해 본인의 개발이나 재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분배와 사전분배의 확대이다. 소득세나 재산세 같은 직접세를 늘리고, 적극적인 이전소득으로 분배구조를 개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소득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일부 사회복지정책이 전달체계 상 근로의욕을 떨어트리고, 제도의 그늘에서 무전취식하는 경우가 있어 부정적인 의견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소득의 증가는 전체적으로 구매력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지표로 나타났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사회적 경제 주체들의 발굴 및 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경제 위기 시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던 협동조합들은 미래 자본주의 경제체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명박 대통력 당시 협동조합을 주요한 사회적 경제 주체로 육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기존 개별법에 의해 설립된 엄청난 덩치의 협동조합들과 달리 금융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을 걸어 두었다. 당연히 협동조합들은 처음 기대와 달리 기존 경제체제에 한 축이 되지 못하고 매우 미미한 활동만 하고 있다. 비슷한 사회적 경제 주체인 마을기업과 자활기업, 사회적 기업도 전체 경제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처럼 이들의 활동이 전체 경제구조에서 20% 이상으로 확대 될 경우 일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구조적인 안정성 때문에 경제위기시나 배분에서 크게 순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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