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찾았다가 평생 단골이 된 집이다. 평양냉면이라는 접하기 쉽지 않은 음식을 최애 아이템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곳이기도 하다. 지인들을 이집에 처음 데리고 왔을 때 한결같이 가격 대비 맛이 전혀 없다며 다들 타박을 했었다. 심지어 행주빤 물 같다는 혹평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평양냉면을 내것으로 만드는데는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한 법! 처음 데리고 온 사람들이 이젠 다른 이들에게 평양냉면의 진정한 맛을 아느냐며 생색을 내는 것을 보면 평양냉면은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맛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과연 냉면을 주력하는 집에 손님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차장에 안내요원이 필요할 정도로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솔직히 빈 자리가 거의 없다. 시간이 오후 2시가 다 된 무렵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이곳을 여름엔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이 평양냉면에 빠져드는 것일까? 이유를 대라고 하면 글쎄~ 정확하게 이거다 하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육수? 메밀면? 물론 이것도 이유이기는 하다.
추운 겨울이면 등장하는 만두국도 있어 주문했다. 주변에 평양냉면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우연히 일행이 된다면 이런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만두국의 만두도 계절 메뉴이긴 하지만 직접 만드는 모양이다. 예전 장모님의 만두와 아주 흡사한 맛이다. 고급진 맛이다. 가격은 냉면과 같은 14,000원이다. 만두국 한 그릇에 만두 6알이 들어 있다. 거의 한 알이 2,000 가까운 가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서 그런 가격을 신경쓰지 않는다. 맛있기 때문이다. 냉면만큼 아니지만 말이다. 처음 나온 평양냉면은 '이게 다야?' 할 정도로 뭐가 없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다.
담백 그 자체인 비주얼에 겨자를 조금 넣고 식성에 따라 식초도 넣는다. 잘 섞어 젖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처음 이집의 물냉면을 보면 다들 하는 말이 왜 냉면에 고춧가루와 쪽파를 썰어 넣는냐는 것이다. 글쎄~ 오리지널 평양에서 이렇게 먹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집의 평양냉면이 가진 내공에 비하면 이런 토핑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보다 더한 무엇인가를 올렸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그러면 도대체 왜 이집의 평양냉면에 빠져드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담백함의 깊이 때문이다. 담백한데 깊다?
평양냉면의 첫 맛은 '너무 싱겁다.' 이다. 육수 속에 뭔가 고기맛 같은 것이 있긴 한 것 같은데 희미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자꾸 숟가락질을 하게 된다. 한 마디로 질리지가 않는다. 달달하고, 맵고, 조미료 맛이 강한 국물은 이렇게 자꾸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육수가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과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가족같은 존재이다. 가장 친한 친구같다. 그러니 계속 먹어도 언제나 반갑고, 즐겁고, 행복하다. 이런 깊이를 이기려면 더 깊은 맛으로 쫓아야 하는데 그런 맛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날은 만두국도 이런 맛에 한 보탬을 했다. 강한 듯 강하지 않은 만두의 맛도 평양냉면과 비슷했다. 거기게 한 가지 더... 평양냉면은 언제 먹어도 이맛이라는 것이다. 변함이 없다. 아마도 정해진 레시피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는 것이리라. 이런 상록수 같은 한결같은 맛도 평양냉면을 찾는 이유다. 나는 비록 나이를 먹어 몸이 늙었어도 젊었을 때 먹던 그 맛을 여기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그래서 이집에 유독 나이 많은 손님들이 자식들과 손주들의 손을 잡고 들어 오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역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대단한 맛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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