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 닭갈비의 고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춘천에 가면 꼭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으려고 애쓴다. 춘천의 명동은 서울 명동보다야 규모가 작긴 하지만 춘천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명소 중에 명소이다. 특히나 젊은층이 많은 곳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옷가게나 화장품, 패스트푸드 가게는 많은데 흔히 말하는 호프집이나 대포집 같은 술집이 별로 없다.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지역의 명소에는 꼭 술문화가 번창하기 마련인데 문화의 도시답게 이곳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우리는 이날도 춘천의 닭갈비 골목으로 길을 잡았다. 이곳 골목길 역시 다른 곳에 비하면 사람이 많은 편이다. 닭갈비 하면 커다란 솥뚜껑 같은 팬위에 고구마나 양배추 같은 야채들을 함께 익혀 먹는 우리 주변의 흔한 모습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곳에서는 그냥 숯불에 돼지고기 처럼 구워먹는 닭갈비도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그런 방식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팬 위의 닭갈비를 더 즐기기 때문에 오늘도 그런 집중에 한 곳을 찾아 들었다. 닭내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닭갈비와 내장을 각 1인분씩 주문했다. 아마도 닭내장탕에 들어가는 야들야들한 닭염통이나 모래집을 연상했기 때문이리라... 영화 세트장 같은 아기 자기 한 골목을 길을 돌아 오늘 우리가 간곳은 유미닭갈비라는 곳으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데 소주가 싫어서 청하를 주문했다. 청주도 가끔식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런 때 인가보다. 이집은 규모가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나름 오래된 단골 손님들이 있는 것 같았다. 역시나 다른 춘천의 닭갈비집들 처럼 여기도 직접 손님상 위에서 닭갈비가 익어가는 방식이었다. 보기에 무서울 정도로 뻘건 양념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 먹어 보니 그렇게 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간단한 김치 같은 반찬은 본인이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셀프 방식이라는 점도 맘에 들었고, 너무 사람이 많이 도대체 옆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쫑긋 세워야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어느 정도 닭갈비가 익어간다 싶으면 일하는 아주머니 아니 할머니들이 가끔 들러 휘휘 닭갈비들을 뒤집어 주었다. 떡은 금방 익지만 닭고기는 아무래도 20분 이상은 걸려야 먹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배도 고프고 얼른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우린 떡이나 양배추 같이 먼저 익는 것들을 쉴새없이 먹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닭내장이었는데 왜 다른 테이블에서 그것을 잘 주문하지 않는지 먹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문양이 많지 않은지 냉동된 내장을 해동하여 주는 것 같았는데 그러다 보니 야들야들한 식감도 없고, 약간 닭비린내도 났다.
꼬치집에서 주문하면 나오는 그 부드러운 식감의 닭염통을 상상한 내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닭고기는 무척 훌륭했다. 이집은 다른 집들과 다른 독특한 양념이 특징이었는데 뭣으로 맛을 내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다른 때와 달리 이집을 들어 오면서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먹고 있던 치즈사리를 주문하기로 했다. 들어 오면서 본 치즈의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3,000원 짜리 치즈 사리는 거의 한 접시 가득 엄청난 양이 나왔다. 이거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일하는 할머니들 말로는 원래 이렇게 많이 주었었단다... 음 이 부분에서 우린 무척 감동했다. 착한 가게임에 틀림없으리라...
그러고 보니 이곳은 일하는 분들이 전부 연령층이 상당한 노인들이었다. 한 분에게 일하시기 힘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분 말로는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란다. 이곳에서 일한 경력은 꽤 되지만 정규직이 아니라 바쁜 주말에만 나와서 일하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이다. 소위 말해 전문 계약직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분들의 손 놀림이 연세에 비해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방식도 노인일자리 창출에 한 방편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의 인건비 부담도 줄여주고 노인들의 노하우을 살린 일자리도 제공하고 말이다.
치츠가 녹아들자 그 고소한 냄새가 정말 참지 못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우린 닭갈비를 먹었다기 보다는 닭갈비 맛 치즈구이를 먹은 셈이었다. 양도 많고 고소하고 쭉쭉 늘어나는 식감도 좋고 정말 맘에 들었다. 닭갈비 집에서 이렇게 고소한 치즈 맛에 빠질 줄이야... 청주와 함께하는 고소한 치즈는 역시나 또 하나의 천생연분이었다. 앞으로 치즈 관련 음식을 먹을 때는 꼭 시원한 청주를 함께 먹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상추에 닭갈비도 언져 먹어보고, 마지막엔 닭갈비의 대미를 장식하는 볶음밥도 먹었다. 이렇게 되면 우린 닭갈비 완전 코스를 제대로 즐긴 셈이 된다. 그렇게 두병의 청하와 닭갈비 덕에 알딸딸해 진 우리는 근처의 커피집을 찾았다. 거기 앉아서 낙조를 바라보듯 그렇게 관조하는 자세로 춘천 시내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재미가 또한 좋았다. 역시 약간 기름지고 몸에 덜 좋은 음식이 맛이 좋은가 보다.
닭내장만 아니었다면 우린 이곳에 만점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내장에서의 실망은 좀 그랬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이곳에 간다면 절대 내장을 주문하지 않으면 된다. 하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닭갈비에만 전념하는 모습이었는데 내가 괜히 다른 길로 간 우를 범한 것이다. 그래도 아주 맛있고 만족스런 저녁이었다. 왜 춘천하면 닭갈비 닭갈비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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