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길에 잠시 강릉에 들렀다. 점심을 먹기 위함이었다. 처음 계획은 몇 번 갔던 집으로 가자는 것이었지만 정말 우연히 이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강원도 전역이 막국수로 유명한 지역인데 강원도라는 지명 앞 '강' 이라는 명칭이 강릉에서 유래했다는데 맛난 막국수집 하나가 없을리가 없었다. 우리가 잘 몰라 그렇지... 이집의 이름은 경포막국수이다. 아주 유명한 맛집으로 줄을 서서 먹는 집은 아니지만 리뷰가 좋아 들러 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막국수집들은 레시피를 공유라도 하듯 비슷하긴 하다. 과연 이집에선 어떤 맛을 먹게 될까?
대부분의 막국수집들이 그렇듯 여기도 겨울엔 아무래도 철이 아닌 모양이다. 한창 점심시간이지만 실내엔 두 팀의 손님밖에 없었다. 이런 쌀쌀한 날씨에 막국수를 먹겠다고 가는 사람이 어쩌면 이상한 성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워낙 막국수를 좋아하니 이런 추위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 우린 이집의 자랑이라는 명태비빔막국수와 시그니쳐인 물막국수 그리고 두부맛이 좋다하여 모두부 반모도 주문했다. 두부맛이 뭐가 특이할까 만은 그래도 여행의 맛은 맛난 음식인데 강원도 모두부 한 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막국수보다 두부가 먼저 나와 일단 두부와 김치로 에피타이저를 삼았다.
그런데 두부도 두부지만 함께 먹는 김치가 너무나 맛이 좋았다. 강원도 김치 특유의 시원함과 담백함이 강하게 나오는 아주 익숙한 맛이었다. 생각해 보니 양양이 고향이셨던 어머니가 해 주셨던 김치의 맛이다. 강원도 김치는 전라도와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맛이다. 젓갈을 거의 넣지 않고, 약간은 슴슴하게 만들어 시원한 맛으로 먹는다. 어릴적부터 이런 김치에 익숙해져서인지 이집의 김치는 꼭 맘에 들었다. 나올 때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렇게 담백하냐고 물었더니 생고추를 갈아 넣는 것이 강원도 김치의 특징이란다. 아~ 어머니도 그럼 그렇게 만드셨을까?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막국수가 나왔다. 첨엔 정말 몰랐다. 이집이 이렇게까지 깊은 맛을 내는 곳인줄... 무슨 평양냉면을 먹는줄 알았다. 심심하면서 깊은 육수의 맛은 알싸한 메밀면과 완전체였고, 과하지 않은 양념이 만들어내는 담백한 맛은 소위 포스가 있는 전문가의 그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 맛을 내는 것일까? 워낙 물 막국수가 맛이 좋아 비빔은 그냥 그럴 줄 알았는데 비빔도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에 입에 착붙는 맛이 그만이었다. 정말 오랫만에 아주 수준높은 막국수를 만났다. 역시 세상은 넓고 전문가는 많다. 전혀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이런 깊은 내공의 고수를 만나다니...
밖의 날씨가 이렇게 쌀쌀한데도 숟가락으로 얼음이 동동 떠있는 육수를 얼마나 퍼 먹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깊은 맛이다. 막국수 면이 "100% 메밀이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육수와의 조화가 좋아 그런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맛나고 가격도 착한 음식을 먹게 되면 주인장이 존경스러워 보인다. 강원도 김치의 비법도 알아냈고, 맛도 훌륭했던 강릉에서의 점심은 이렇게 큰 감동을 주었다. 강원도는 정말 막국수의 동네가 맞다. 얼마 전 먹었던 동해시에서의 막국수도 그렇게 훌륭했는데 여기서 또 고수를 만나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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