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우연히 여주시 천서리에서 막국수를 먹었다. 그날은 화요일이었는데 천서리막국수를 포함하여 많은 집들이 문을 닫았다. 정말 아쉬웠다. 그렇지만 문을 연 곳이 있어 맛나게 먹고 돌아갔다. 그날의 여운이 남아 동해안으로 가는 길에 조금 돌아 북여주로 왔다. 천서리 막국수 촌에서 다시 한 번 감동적인 막국수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서리 막국수 본점은 웨이팅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포기! 그 옆에 다른 집들도 웨이팅이 적게는 서너팀, 많게는 열팀이 넘게 있었다. 도대체 여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계절에 막국수를 먹겠다고 이리 몰려 오는 것일까?
그 중 웨이팅이 거의 없는 한 집을 찾아 갔는데 이름은 강계봉진막국수 라는 곳이었다. 여기도 실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 운이 좋게 우리는 바로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역시 인생은 운이다. 늘 그렇듯 우리는 비빔과 물 막국수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막국수가 나오길 기다리며 테이블에 붙어 있는 안내 문구를 보니 여긴 매운 막국수를 파는 곳이란다. 이런... 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다. 하필 꽤나 맵다는 막국수집으로 들어 오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공있는 집이니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한 번은 맞닥들여 봐야지... 오너라 매운 막국수~
막상 음식이 나오고 보니 고추가루 양념이 많기는 했지만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결론적으로 보면 물 막국수는 맵지 않다. 하지만 비빔막국수는 제법 맵다. 맵질이는 먹기 힘들 정도의 위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먹힌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맵지만 달지 않다. 그리고 이런 저런 양념의 맛이 복합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맛있게 맵다. 그래서 강렬한 맛이지만 먹을만 하다. 이런 막국수 영역도 있었네... 참 음식의 세계란 놀라운 것이다. 막국수가 어느 정도 고추가루를 품고 있는 경우는 봤지만 청량리의 매운 냉면처럼 강렬한 매운 맛이 있다니 말이다.
물 막국수는 맵다기 보다는 담백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비주얼이나 맛이나 평양냉면과 아주 비슷했다. 그 말은 맛의 깊이가 꽤나 된다는 뜻이다. 막국수로 이런 깊은 맛을 내다니... 여기서 다시 놀라게 된다. 천서리 막국수를 그냥 흔히 보이는 체인점 막국수 정도 된다고 치부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냥 막국수 절대 아니고 깊이가 있는 내공있는 막국수였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특이한 맛이었다. 사람들 입맛이 절대 거짓이 없다더니 여기 저기 길게 늘어선 웨이팅 줄이 그런 맛의 깊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반찬으로 나온 석박지 마저 예사롭지 않은 고수의 맛집에서 감동적인 점심을 먹었다. 국수 한 그릇이 왜 이리 비싸냐고 타박했던 동생의 하찮은 비난이 여기오니 더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한 그릇의 국수가 아니다. 그저 세월이 녹아든 전문가의 작품이다. 단 돈 얼마를 내고 이런 작품을 입안으로 넣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요, 자본주의 만세다. 깊이있는 국물은 남기기 아까울 정도라 싹싹 비워냈다. 국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데 어쩌랴 남기기엔 너무나 아쉬운 것을... 천서리 막구수촌은 아무래도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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