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고기국수는 제주에 있는 것이다. 보통은 부산이나 밀양에서 많이 먹는 돼지국밥과 같이 돼지 뼈를 우려낸 국물을 사용하는 진한 사골 국물이 일품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부산이나 제주에는 있지만 내륙, 특히 중부지방에 오면 거의 볼 수 없는 것이 돼지 사골을 이용한 국수 요리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골은 다 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돼지뼈를 이용하는 아주 유명한 국물이 또 있다. 바로 일본의 돈코츠 라멘이다. 둘은 아주 흡사하다. 어찌보면 조상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양양에 갔다가 고기국수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양양군 물치항 근처에서 만난 고기국수 집의 이름은 박가 고기국수였다. 추측컨대 주인장이 박가이거나 박가성과 연관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리뷰를 보니 국물이 일품이라는 평이 많았다. 고기국수는 역시 국물이 맛나야 한다. 아침 10시반이 오픈이라는데 우리는 10분 정도 일찍 갔다. 그런데 다행히 영업을 한다고 하여 운좋게 들어갈 수 있었다. 전날 봐둔 곳이긴 했지만 이렇게 영업시간까지 맞추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다른 무엇을 주문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그냥 고기국수 두 개를 주문했다. 역시 가장 유명한 시그니쳐 메뉴를 먹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지름길이다.
매서운 동해안의 겨울 바람이 주인인양 행세하는 아침에 아직 열이 나지 않는 가게에 들어가 앉아 있는 일은 곤욕이긴 했다. 하지만 뜨건 국물을 먹다보면 금새 몸에서 열이 날 예정이기에 조금은 쌀쌀한 기운을 그대로 맞으며 앉아서 기다렸다. 유난히 사진에 김이 많이 서린 채 찍힌 것은 이런 아침의 컨디션 때문이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드디어 우리의 고기국수가 나왔다. 그냥 봐도 전형적인 제주 고기국수와 아주 흡사했다. 일본의 돈코츠 라멘과도 아주 닮았다. 역시 이들은 조상 대에서 뭔가 일이 있었을게다. 이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 너무 맛나 보이는 국물을 그냥 열 숟가락은 떠 먹은 듯 하다.
고기국수의 면이 아주 특이했는데 정말 일본의 라멘처럼 가늘고 긴 면이었다. 거기에 하얀색이라기 보다는 노란빛이 도는 정말 이국적인 국수 면발이었다. 분명 이것은 국수라기 보다는 라멘에 가까웠다. 잘 익은 돼지고기가 고명으로 들어 있었는데 차슈같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일본풍의 라멘보다는 담백하고 진한 국물이지만 베이스는 일본라멘과 사촌지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아주 맘에 들었고, 해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구색이었다. 여기엔 다른 무엇도 첨가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후추가루 조금이면 족했다.
시원하게 잘 담근 석박지는 일본에는 분명히 없는 것이다. 그릇의 깊이가 있어 첨 볼 때 보다 먹다보니 양도 제법 많았다. 아침 해장이라 하기엔 좀 부담스러울 정도의 양이었다. 혹자는 국물이 부족하다 할 수도 있지만 다소 짭짤한 국물을 아무리 진하다 해도 나온 양보다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는 면이 맘에 들어 남길 수도 있지만 아주 싹싹 잘 비워냈다. 이런 것이 진정한 맛이다. 부담스럽지만 젖가락을 내려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 맛 말이다. 정말 아침부터 과할 정도로 잘 먹은 한 그릇이었다. 이렇게 먹으면 점심에 대단한 맛을 가진 어떤 음식이 나온다 해도 상대가 안 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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