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먼 거리였다. 춘천에서도 얼마를 왔는지 모를 정도로 운전하고 왔다. 포항이란 곳이 이렇게 먼 거리인줄 예상을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포항제철을 둘러 보는 것은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였다. 대한민국의 중공업을 상징하는 제철소를 들러 이런 대규모 시설의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아무튼 포항 시내에서 포스코를 지나는 길이 꽤나 길다 느껴질 정도로 포항은 항구라기 보다는 공업의 도시라 해야겠다. 아무튼 우린 거기에 그리 어렵사리 갔다. 배가 고프고, 뭔가를 먹고 싶었다.
차에 내장된 네비는 영 기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구룡포로 찍고 갔는데 포항 시청 근처의 시내 한 복판 구룡포 식당 앞으로 우릴 인도했다. 아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이젠 늦었다. 일요일 인 것이 다행이었다. 아마 평일이었다면 이 일대가 엄청 복잡하고 차 세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휴일이라 우린 어렵사리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렇게 뭔가를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역시 눈이 좋아야 고생을 하지 않는다고 먼저 이 집을 발견했기에 우린 주린 배를 부여잡고 이집까지 갈 수 있었다. 칼국수는 맛없기가 더 힘든 아이템이니 어딜 가나 비슷할 것이란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더구나 여긴 체인점이었다. 당연히 규격화된 일관된 맛을 선 보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체인점도 또한 처음이었다. 현풍 닭칼국수라는 상호는 들어 본 적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칼국수가 육고기 위주의 육수이거나 닭 육수 인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함께 한 이는 영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랴 이 낯선 곳에서 다른 아이템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터라 우린 그렇게 적당히 여기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말 그대로 달래는 것이지 감동 받고 그런 것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고 왠만하면 감사하리라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은 영 아니었다. 너무 맛이 좋았다. 아니 내공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린 원래 면 중에 칼국수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만큼 입맛이 까다롭고, 평이 날카롭다고 자평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별 기대하지 않고 들어 갔다가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처럼 띵 했다. 정말 말 그대로 너무 맛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닭 국물을 무척 좋아하는데 닭 육수는 소고기나 돼지보다 느낌 상 좀 가벼우면서 익숙하고 그 감칠맛이 더 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집은 그런 나의 기대와 정말 제대로 부합되는 곳이었다. 가벼우면서 익숙하고 깊은 그 무엇이 있었다. 거기에 살짝 올려진 닭 고기 고명이 아주 일품이었다.
정말로 '왜 네가 거기서 나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번쩍했다. 이런 맛을 이렇게 헐한 상황에 만나면 안 되는 것인데... 보다 좋은 자리에, 좋은 상황에 만나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래서 세상은 참 넓은 것이다. 체인점에서 이런 감동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어쩐지 홀에는 손님이 없는데 종업원이 제법 있다 싶더니 배달이나 포장 손님이 많은 게지... 닭 국물이라지만 뭔가 육고기 비슷한 것과 디포리 같은 어물도 들어 간 것이 분명했다. 진짜로 만족스럽고, 참 게걸스럽게 먹을 정도로 입에 잘 맞았다. 아 이런 깊은 맛을 이렇게 만나다니~ 앞으론 좀 더 겸손하고, 공손해야 한다. 어디서 어떤 고수를 만날지 정말 모르는 것이 세상이다. 포항 시내 그닥 특징없어 보이는 체인점에서 깊은 깨달음과 깊은 국물을 맛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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