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험을 보는 아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저렇게 먹고 사는 길이 어렵네 싶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 특히 대학생들은 부모 잘 만나 시작부터 좀 가진 애들이 아니라면 모든 길이 가시밭길이다. 그런 점이 미안하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니 이해하고 일단 힘든 시험 본 아들이 원하는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의정부 민락동에 고객들의 평이 좋은 집을 미리 봐 두었다. 이름하여 피셔맨스 키친이다.
규모가 엄청 크거나 고급진 곳은 아니지만 나오는 음식이 다 맛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다. 당연히 궁금하기도 하고, 가보고 싶기도 했다. 양식이라면 뭘 줘도 거의 먹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먹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길이라 신나고 즐거웠다. 규모에 비하면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언뜻 보아도 6~7명은 되는 것 같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저렇게 꼭 공부가 아니라도 본인이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아 즐겁고, 신나게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워낙 양식과 안 친하다 보니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아들은 살치살 스테이크 하나 시켜주고 우리는 파스타를 주문했다.
에피타이저 식으로 첨에 빵이 나오는데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는다. 시큼한 소스가 뭔지 잘 몰라도 빵과 어울린다. 가만히 보면 여기도 이태리 식 뭐 그런 분위기다. 이태리를 가 본적이 없으니 정통의 맛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 내가 주문한 파스타는 알리오올리오 였는데 유일하게 파스타 중에 그래도 잘 먹는 것이 이것이다. 올리브 오일을 얼마나 잘 섞느냐와 파스타 면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집의 알리오올리오는 여지껏 내가 먹어 본 것 중 제일 좋은 편이었다. 특히 마늘을 잘 볶아서 그 향과 맛이 잘 어울렸다.
뒤에 나온 새우와 해산물이 들어간 파스타는 접시 윗 부분에 치즈를 눈처럼 뿌려 주는 정성이 들어갔다. 솔직히 소스는 알리오올리오 만 못했지만 그래도 면과 해산물의 조화는 괜찮았고, 특히 아주 커다란 새우 두 마리가 들어가 식감을 살려 주었다. 저렇게 얇게 치즈를 저미는 실력도 알아줘야겠다. 파스타가 나오고도 한참이 지나도 아들의 스테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나누어 먹긴 했지만 거의 파스타를 다 먹을 무렵에야 스테이크가 나왔다. 그런데 왜 늦었는지 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이곳에선 스테이크를 기본적으로 미디움 레어로 구워준단다. 잘 구워진 스테이크 고기는 붉은 빛이 도는 먹음직 스러운 것이었다. 그 스테이크를 아주 잘 달궈진 돌판 위에 올려 놓았다. 아마 레어가 맘에 안 드는 사람은 이 돌판에 고기를 좀 더 두어 웰던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는 방식인 것 같았다. 만일 웰던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 접시에 고기를 내려 놓으라고 했다. 잡내를 제거하기 위한 불꽃 쇼를 잠깐 보여주고, 허브솔트에 고기를 찍어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 소금이 압권이었다. 고기도 고기지만 허브솔트에 찍은 고기는 풍미가 장난이 아니었다. 평소 스테이크를 쳐다보지 않는 사람인데도 몇 점을 집어 먹었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
그리고 야채를 즐기지 않는 아들 대신 내가 가지며, 호박이며 다 갖다 먹었다. 이렇게 야채를 함께 구워 먹으니 이 맛도 괜찮았다. 이래서 스테이크 구울 때 야채를 함께 넣는 모양이다. 아무튼 이집 덕분에 새로운 스테이크의 세계를 경험한 셈이다. 가격이 아주 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퍼블릭 코스라 할 만한 합리적인 선이었다. 다만 내가 늘 원하는 '술과 함께' 라는 구호와는 좀 안 어울리는 곳이라 그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잘 먹는 아들을 보니 지갑 여는 손길이 행복했다. 이런 맛에 사는 것 아니겠는가? 결과야 어찌 되든 일단 최선을 다하고, 부모의 뜻을 따라 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밥 먹으면서 대신했다. 주말에 이렇게 보내는 시간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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