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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사는 이야기

그 옛날 닭발에 얽힌 추억과 미안함... 그리고 매콤한 맛~

by jeff's spot story 2024. 1. 21.

아내가 매콤한 것이 먹고 싶다며 이리 저리 궁리를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닭발'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매운 음식의 대명사처럼 된 불닭발은 나도 좋아하는 편이다. 매운 것을 잘 먹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오늘 아내처럼 나도 그런 것이 땡길 때가 있다. 물론 이것 말고 쭈꾸미나 낙지, 매운탕도 매콤한 음식이지만, 매운 맛에도 개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사실 나는 맘 편히 앉아서 닭발을 즐기기는 좀 머쓱한 기억이 있다. 한동안은 그 기억 때문에 닭발 자체를 먹지 않았던 기간도 있었다. 


기억의 그 때는 거의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내와 결혼하고 1년이 좀 넘은 시기였다. 첫 애를 임신한 아내는 무척 힘들어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컴퓨터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장사가 그리 신통치는 못했다. 장사를 하면서 사귀게 된 동갑내기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집이 우리집 근처였기 때문에 퇴근하고 자주 어울렸었다. 특히 시장이 가까워 우리가 자주 가는 닭발집이 있었는데, 매운 맛이 그런대로 괜찮고, 가격도 착한 곳이라 우리는 약속을 아예 그 집으로 잡곤 했었다. 


그렇게 몇 날 몇 일을 그 친구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닭발과 소주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는데, 어느날인가 과음을 하고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어제 어디에 갔었냐고 물어와서 친구와 닭발집에 갔었다고 하니 자신도 데리고 가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해 놓고, 출근해서는 그만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당시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아내는 망각해버리고 그날도 그 친구와 함께 닭발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말았던 것이다. 밤 늦도록 술 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아내의 삐삐가 와서(당시엔 휴대폰이 거의 없었으니까...) 취한 채 전화를 했더니 어디냐며 밥도 안 먹고 기다리는데 왜 안 오냐고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아차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취한 까닭인지 나는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닭발집에 있다고 말해 버렸다. 아내는 더 크게 울면서 전화를 끊었고, 그날 우리는 엄청나게 크게 다투었다. 나는 홧김에 다시 닭발집을 가면 사람도 아니다 라며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었다. 호언장담은 했지만 나는 아내에게 두고 두고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임신한 사람을 더 잘해주는 못할 망정 그냥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는 나의 행동이 참 싫었다. 아내는 벌써 그 때의 일들을 다 잊은 듯 한데 나는 아직도 닭발집만 보면 당시의 미안했던 나의 행동이 떠 오르곤 한다. 잊고 사는 사람에게 그 때는 미안했다며 다시 좋지도 않은 과거를 들 출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마도 이젠 아내가 나와 닭발을 즐겨 먹는 것 보면 그 때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당시에 왜 그랬을까 하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기억에서 벗어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닭발을 앞에 놓고 자꾸 자신의 허물을 들춰서 뭐 할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는 아내에게  "와! 이 집 닭발이 어디서 많이 먹어 본 맛 같아."하며 얼버무렸다. 이날 우리는 땀 깨나 흘리며 맛난 저녁을 먹었고 이제 닭발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이 또 하루 채워져갔다. 좋은 기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