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산 여행은 일종의 맛 기행이었다. 원래 여행이라는 것이 먹는 것과 자는 것이 90% 이상이기 때문에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엔 특별히 컨셉을 그렇게 잡았다. 부산에 오면 의례히 갔던 해운대를 가지 않고, 소곱창이 유명하다는 광안리 부근의 식당을 검색하여 숙소도 근처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광안리 해수욕장의 바닷가가 너무나 낭만적이고 멋졌다는 것이 문제다. 해운대보다 오히려 더 젊음의 거리였고,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요사이 지방의 관광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어렵다 하는데 여긴 아니었다. 아주 불야성이었다.
그래도 아주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시즌이 아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린 바다를 보면서 먹기로 했다. 그래서 고른 집이 바로 이집, 황소해물탕, 해물찜 집이었다. 건물의 2층에 식당이 있기 때문에 일단 전망이 좋았고, 11월 임에도 선선하기만한 밤 기온도 창을 활짝 열고 식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식당 자체는 세월의 흔적이 보였지만 해물탕이라는 좋아하는 아이템을 먹을 생각에 약간의 흥분도 있었다. 2만원을 더 주면 넣어 준다는 산 문어를 옵션으로 한 해물탕을 주문했다. 둘이 먹기에 적당한 크기라는데 가격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더우기 관광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소주는 지역의 술이라는 대선소주를 주문했다. 지방에 왔으면 거기 술을 마셔주는 것이 또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가격에 비해 구성이 아주 푸짐했는데 어느 정도 끓기 시작하면 주인장이 와서 해물을 손질해주었다. 오징어나 조개들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고 빼주고 그랬다. 그리고 나중에 어항에서 살아있는 돌문어를 그대로 풍덩 해물탕 냄비에 빠트리는 방식이었다. 뜨거운 국물에서 몸부림치는 문어를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주인장 왈 "그렇게 생각하면 암것도 못 묵씁니다." 하는 말을 들으니 수긍이 되었다. 하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설이 있다는데 정말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암것도 못 먹는다.
밖으로 보이는 광안리 바닷가에서는 요트에서 계속 폭죽을 쏘아 올렸다. 아마도 이번주에 광안리 밤축제가 열린다고 한 것 같다. 확실히 부산은 젊음의 기운이 살아 있는 관광지가 맞았다. 해운대에서도 그렇게 많은 외국인과 젊은 사람들을 본적이 없다 싶을 정도였는데 여기도 비슷했으니 말이다. 시원한 밤바다가 우리의 풍경이 되어주는 분위기 좋은 해물탕 집에서 먹는 맛난 해물의 맛은 맛과 분위기의 극치였다.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은 담백하고 깊은 국물의 맛은 해물 본연의 맛이라 하겠다. 사실 해물만 싱싱하면 별 다른 양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해물탕이다.
하도 들어간 건더기가 많아 술을 다 마시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불렀다. 본고장이라 이런 가성비가 나오는 것일까? 아님 이집이 특별히 그런 것일까? 경상도 여행을 하다보면 가격이 확실히 좀 싸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냥 우연일까? 아무튼 우린 해물탕을 거하게 먹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밤 광안리는 한 낮의 열기가 가득했고, 이상할 정도로 밤 조깅을 하는 사람이 많더라는... 이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행인이 많은 길을 그것도 밤에 왜 뛰어 다닐까? 과시욕? 암튼 참 특이한 동네임에 틀림없다. 해물탕도 맛나고 동네도 활기가 넘치고 여행의 참맛이 이런 것이다 싶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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