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이제 어딜 갈 때 꼭 국도를 이용하는 버릇이 생겼다. 빨리, 편하게 가는 것은 고속도로가 맞지만 여행의 묘미를 만끽하는 것은 역시 국도의 여러 다양한 풍경들이다. 전국 어딜 가나 비슷한 모양의 고속도로를 몇 시간씩 간다는 것은 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국도는 지루할 틈이 없다. 이날은 인천공항을 가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서 충전하고 와도 되지만 일부러 가는 길에 어딘가에 들리려고 파주시 월롱면에 들어섰다. 무사히 충전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다 이집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말랭이 국수와 왕돈까스' 집이다.





식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랭이가 무엇인지 우리끼리 설왕설래 했다. 의견은 대충 무말랭이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추측이 맞았다. 여기는 비빔국수에 무 말랭이를 아주 잘게 썰어 고명처럼 주는 것이 특징이란다. 무를 말리면 여러 좋은 성분들이 많아지는데 그런 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전략이 아닌가 싶다. 무말랭이를 고추장에 무쳐 먹는 반찬만 먹어봤지 이렇게 국수의 고명으로 먹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여러 버전들이 있겠지만 비빔국수는 아직도 다양한 레시피들이 개발 중인 참 특별한 음식이다. 우리는 비빔국수와 미니돈까스를 세트로 주문하고 잔치국수도 주문했다.





추가 반찬은 셀프 코너에서 가지고 오면 되는 방식이다. 국수가 나오고 보니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처음부터 좀 적게 달라고 이야기 했어야 했다. 고명들 위에 양파를 얇게 썬 편을 올린 것도 특이했다. 잔치국수가 일반적인 비주얼이었다면 역시 비빔국수는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듯 했다. 양념이 미리 비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이 직접 양념을 국수 면발에 비비는 약간의 수고는 해야 한다. 잔치국수의 양도 너무 많아 미니 돈까스는 괜히 시킨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국수만 두 개 선택했어야 하는데...하지만 이미 늦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시간이다.





진짜 비빔국수에는 양념을 한 무말랭이가 엄청 들어 있었다. 이런 발상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비빔국수의 양념은 뭐랄까 좀 라이트한 것이었다. 고추장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양념으로만 만든 아주 가벼운 양념이었다. 묵직한 맛이 느껴지는 일반적인 고추장 베이스 비빔국수들과는 분명 궤가 다른 음식이었다. 그렇다고 망향비빔국수처럼 단짠맵이 강한 것도 아니었다. 김치국물이 베이스 같기는 한데 꼭 그렇게 자극적인 것도 아니다. 이런 맛은 다른 곳에선 먹기 힘든 것 같다. 아무튼 비빔국수를 먹으면서 담백하다는 표현을 쓰기가 좀 그런데 그것이 맞는 것 같다.




미니돈가스도 나왔는데 말이 미니지 이건 그냥 1인분의 양이었다. 전체적으로 이집은 양이 참 후한 곳이다. 음식의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린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이 적어 거의 절반은 남긴 것 같다. 주인장에게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 자리를 빌어 말하자면 절대 맛이 없어서는 아니다. 다음에 간다면 양을 좀 적게 달라고 꼭 말할 것이다. 돈가스도 담백하니 라이트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뭐랄까 생기발랄한 젊은 학생들의 음식같다는 느낌? 뭐 그런 것이 강했다. 그래도 여행길에 만나는 즐거움이 아닌가... 이렇게 든든하게 속을 채웠으니 다시 길을 재촉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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