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 골목이 지금처럼 인기를 얻기 전부터 찌개 먹으러 다니던 사람들은 가장 유명하다는 오뎅식당 말고도 자기들이 다니는 단골식당이 따로 있곤 했다. 우리도 오뎅식당 보다는 형네식당을 더 자주 갔었다. 형네식당도 체인점 사업도 하고 그랬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위축된 분위기이긴 하다. 그리고 또 자주 간곳은 찌개골목 제일 앞에 있는 장흥식당이었고, 이날 갔던 보영식당이었다. 부대찌개 맛이 식당마다 다를까? 물론 사람이 다르니 손맛이 조금씩 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부대찌개라는 것이 결국 김치와 소세지, 햄을 넣은 찌개 아니던가?
재료가 비슷하니 맛도 비슷할 수밖에... 물론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날 간 보영식당은 조금 진한 국물과 양념맛이 나는 집이다. 여기도 꽤나 오래된 집이고, 나름의 단골들도 많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고 하면 보영식당에 왔는지를 묻는다. 오뎅식당 온 사람들이 눈치도 없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우리야 처음부터 보영식당을 가려고 왔으니 진 단골이 맞다. 오랫만에 왔더니 부대찌개의 값이 일 인분에 12,000원이 되었다. 라면사리 하나 넣으면 둘이 먹는데 25,000원이 된다. 저렴하고 푸짐한 서민의 찌개라 하기엔 살짝 값이 좀 나가는 음식이 된 것이다.
주문과 동시에 덜 조리된 찌개가 나오고 특이하게도 떡 두 덩어리를 준다. 아마도 에피타이저인 모양이다. 이런 앙증맞은 떡으로 일단 입안을 달래라는 것이겠지... 언제 끓을까 싶을 정도로 거의 조리가 되지 않은 찌개가 나왔다. 손님 상에서 최소한 10분 이상은 끓어야 먹을 수 있다. 가만히 재료를 보니 역시 소시지와 민찌라는 다짐육, 햄이 눈에 띄인다. 커다란 두부도 있고, 당면과 파채도 넉넉하게 들었다. 국물은 맑은 편이다. 아마도 야채수를 쓰는 모양이다. 약간의 고추가루가 뿌려져 연못 위에 꽃이 핀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이렇게 맑아 보이는 국물이 그렇게 진하게 변하는 것이다.
라면사리는 부대찌개의 화룡점정 같은 역할이다. 그동안 먹은 무수히 많았던 부대찌개 중에서 라면사리를 넣지 않은 것은 손에 꼽을 만큼 거의 없다. 물론 당면이 들어 있기 때문에 굳이 라면까지 넣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라면사리를 넣지 않으면 뭔가 맛이 다른 것 같다. 즉, 라면사리가 들어가야 부대찌개의 맛이 꽉 채워지는 것이다. 라면의 기름기, 짭짤함이 부대찌개를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가 아닐까 싶다. 다른 집들보다 이곳은 찌개의 양이 많아 보였다. 얼른 먹을 수 있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먹는 사람도 인고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드디어 찌개가 완성되었다. 우선 라면사리부터 집어 먹는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겠지만 불기 쉬운 라면부터 먹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거기에 푸짐하게 들어간 소시지와 햄을 밥과 함께 먹는다.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국밥처럼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정말 세월을 뛰어 넘어 입안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는 시간이다. 부대찌개의 맛은 벌써 수 십년째 만족하며 먹는 말 그대로 영혼의 맛이다. 밥과의 궁합도 소주와의 궁합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다. 정말 단촐한 구성이지만 함께 어우러져 가공할 만한 맛을 만들어내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도 결국 건강이니, 염분이니 하는 걱정 따위는 내려놓고 또 정신없이 한 그릇 먹고 말았다. 여긴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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