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가 최근 부각된 현대적인 의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기업문화는 자본주의 기업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하나의 경영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미 오래전 이런 선진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 있다. 바로 유한양행이다. 회사 이름만 들어도 웬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 회사는 창업주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타의 모범이 되는 기업이다.
유한양행의 기업문화는 ‘오너 없는 회사’ 라는 문구에 잘 드러나고 있다. 해마다 10~30년 근속자가 200명 나오는 회사이면서, 92년 동안 단 한 건의 노사분규도 없었던 회사가 바로 이곳이다. 제약업계에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유한양행은 15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 상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2004년 만든 것으로 처음 수상한 이후 매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유한양행의 경영 지표는 '교육·사유·실행'이라고 한다. '연마된 기술자와 훈련된 사원은 기업의 최대 자본'이라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모든 임직원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자란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유일한 정신'을 기업문화와 경영철학으로 굳건히 만들어 놓았다. 실제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 박사가 전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유한재단으로, 전체 지분의 15.5%를 가지고 있다. 유 박사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자녀들에겐 지분 상속이 이뤄지지 않았다. 유한재단 이사장 또한 오너 일가와는 무관한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맡고 있다. 창업주의 자녀에게 기업을 대물림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유한양행은 창업주의 정신과 기업문화를 대물림해 경영지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유한양행에선 무엇보다 최고경영자(CEO)라는 '샐러리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 이정희 사장을 비롯해 역대 CEO 모두가 일반 직원 출신이었다. 공장 생산과 제약 영업 등 다양한 직군에 입사하여 회사생활을 시작한 직원들이었다.
유한양행에선 직무순환제도를 통해 다양한 직무를 거치면서 우수한 실적을 냈다고 평가받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도전을 통해 최고경영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집안 대대로 계승되어 내려오는 재산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오너가 있는 기업이라면 절대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신입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가 되는 꿈은 어찌보면 월급쟁이 누구나 꿈꾸는 미래일 것이다. 이런 비젼을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은 다른 기업에서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해 일하게 되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높아질 것이고, 외부에 있는 소비자나 다른 거래 기업들도 이 회사에 제품에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유한양행의 CEO는 한 차례 연임할 수 있으며, 임기는 최장 6년이기 때문에 자리만 지키면서 시간을 축내는 임원이 있을 수 없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상당수의 퇴사 이유가 '본인의 성장 가능성' 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라 답했다고 하는데 유한양행의 선진적인 기업문화를 볼 때 장기근속자가 많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유한양행의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11년 2개월로, 제약업계 최고 수준이다.
유한양행은 보통 이사회에서 이뤄지는 연간 사업계획 보고 시간에 노조 간부를 비롯한 과장급 이상 직원은 누구나 참석하여 본인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과 직원들이 함께하는 '투 트랙 사내복지'도 눈에 띈다. 92년 만들어져 124억원 넘게 쌓인 사내복지기금과 직원들의 통상임금에서 0.2%씩 공제해 만든 사우공제회기금에서 투 트랙으로 직원 개개인의 경조사를 돕는다. 회사와 직원이 함께 만드는 상조인 셈이다. 만일 직원이 결혼을 하면 직원의 표준월봉 100%가 기금에서, 사우공제회가 10%를 보태 축의금으로 준다.
사내복지기금은 경조금 지원 외에도 저리 대출과 콘도 지원 등 각종 복리후생제도의 재원으로 쓰인다. 직원들은 가사자금부터 주택자금까지 다양한 용도로 연 2%의 금리로 최장 100개월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휴가 또한 법정휴가보다 7일 많은 연 22일을 쓸 수 있다. 여기에 여름휴가로 3일을 더 줘 총 25일 쓸 수 있다. 여성 생리휴가는 유급으로 제공한다.
유한양행은 매년 상·하반기 2차례에 걸쳐 공개채용을 한다. 공채 때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을 채용하는데 영업 직군이 70%로 가장 많다. 학연·지연·혈연을 배제하자는 '3무'를 원칙에 따라 서류전형 이후부터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체용을 진행한다. 서류전형 이후 평가는 단 하루 만에 이루어진다. 필기시험부터 프레젠테이션, 부서장 면접, 임원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한양행의 인사시스템은 공정한 것으로 정평이 나 다른 회사들이 벤치마킹을 할 정도라고 한다.
설립자의 고귀한 정신이 기업문화 속으로 녹아들면서 유한양행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기업문화와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 되었다.
물론 무한 경쟁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현대의 치열한 경영환경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인간적인 기업문화가 과연 경쟁력이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 발 빠른 신기술도입과 새로운 기업문화의 접목은 카리스마 있는 오너 한 사람이 주도하여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유한양행도 지금보다는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면서 재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새로운 의사결정체계를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참고적으로 보면 유한양행은 2017년 기준 잠정실적 기준 매출액 1조 4622억원, 영업이익 887억원을 기록하여 탄탄한 중견 제약기업임을 알 수 있다. 직원 수는 1,700여명이며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위주로 제품 라인업이 짜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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