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운천 시내는 과거의 번성했던 시절의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다. 일단 길이 넓고, 가게가 많다. 지금의 인구에 비하면 도시 자체가 엄청 큰 편이다. 인구는 자꾸 줄어 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군인들이 있어 어느 정도 시내가 돌아가는 느낌이기는 하다. 우리는 가끔 나들이 삼아 운천에 온다. 적당한 드라이브 거리와 색다른 시내의 풍경이 올 때마다 색다른 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왔다가 포천을 대표하는 관광지, 산정호수를 들릴 때도 있다. 이날은 미리 봐 두었던 운천 시내의 분식집에서 모처럼 과거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가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운천 시장 부근에 있는 '짱구분식'이다. 운천에서 분식이라고 검색하면 상위에 나오는 집이다. 일요일 오후에도 문을 열고 있어 편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앉아 있으니 주문전화가 계속 쇄도한다. 여기가 정말 맛집이긴 한가보다. 우리는 떡볶이와 김밥, 그리고 추억이 서려있는 쫄면을 주문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쌍문동에서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만나면 늘 근처의 초원분식이라는 식당에 갔다. 거기서 다른 것 다 주문하지 않고 오로지 쫄면만 먹었다. 맛도 있었고, 가격도 아주 착했다.
아마 그 시절에 우리는 데이트를 쫄면을 먹으면서 하는 것이 좋았나 보다. 사람들은 김밥에 뭔가를 더 넣은 참치김밥이나 치즈김밥 등등 좋아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시그니쳐 그냥 김밥이 좋다. 여기서도 그랬다. 단촐하고 가장 모범적인 김밥이 나와서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아주 크거나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딱 기대했던 그 김밥이었다. 이런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 만족스러운 법이다. 떡볶이는 7,000원이다. 처음엔 가격이 좀 비싼 편이 아닌가 했다. 하지만 막상 나온 다음에 보니 훌륭했다. 오히려 가격이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튼실한 구성이다.
요즘엔 보기 드물게 떡볶이에 쫄면이 들어 있다. 이런 구성은 우리가 어릴적 많이 먹었던 방식이다. 맛도 그랬다. 너무 달지도 맵지도 않은 것이 딱 그 때의 맛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친근하고 익숙한 맛이 나지? 혹 여기 주인장이 40년 전에 쌍문동에 살았나?' 하는 생각 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쫄면도 그랬다. 요즘 음식답지 않게 너무 달지도 맵지도 자극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양념이 너무 맘에 들었다. 운천에서 우리의 추억을 되살리는 음식을 만나다니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옛날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전체적으로 그 시절의 그리운 맛이었다.
쫄면에 콩나물이 들어 있는 것도 그 때의 구성이다. 참 희안하지... 하긴 비슷한 시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이런 맛이 날 수도 있다. 김밥과 떡볶이와 쫄면은 분식집의 대표격인 메뉴들이다. 이런 음식들이 맛나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음에 오면 직접 만든다는 만두도 먹어봐야겠다. 이런 솜씨라면 직접 만든다는 만두는 공장만두보다 훨씬 맛이 좋을 것이다. 운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집이다 보니 차를 세우고 걸어와야했다. 그런 불편은 있지만 연신 손님들이 들락거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우리가 맛본 이집의 솜씨가 그 비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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