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에 공무원시험이나 자격시험을 보는 것은 오랜 관례같은 일이다. 이날도 자격시험을 보러가는 아들을 배웅하면서 서둘렀더니 아침밥을 먹지 못했다. 이럴 땐 가볍게 우동이나 김밥 같은 분식집 아이템이 생각난다. 물론 아재들이 좋아하는 콩나물 해장국 같은 뜨끈한 국물도 괜찮겠지만 아무튼 이날은 그렇게 조금은 가볍고, 별난 맛이 생각났다. 검색을 해보니 의정부시 금오동의 옛 미군부대 부지 근처 새로 지은 건물상가 깔끔한 김밥집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딱 원하던 메뉴인지라 오픈하는 아침 9시에 맞춰서 이집을 찾아갔다. 이름하여 오토 김밥이라는 곳이다.
가정식 김밥을 표방한다는 곳이고, 배달과 포장 위주로 영업을 하는 곳이다 보니 우리처럼 이른 아침에 와서 김밥을 먹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실내는 손님이 있는 공간과 주방이 거의 완전하게 분리된 모습으로 어찌보면 일본풍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문도 종업원이나 주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키오스크를 통해 한다. 주문을 한 다음에야 주인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음식을 주방에서 내어주면 손님이 자신의 테이블에 갖다 먹는 완전 셀프 방식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조금 불편할 수 있는 구조라 하겠다.
국물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삼양 육개장이라는 다소 보기 드문 용기면을 팔고 있었다. 농심이 아닌 삼양의 육개장 사발면은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데 말이다. 이집은 과거 TV에서 고추냉이 김밥으로 유명세를 얻었단다.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고추냉이 김밥은 주문해야 했고, 시그니쳐 메뉴도 먹어봐야 하니 그것도 주문했다. 그리고 뻑뻑한 김밥으로만 먹긴 그래서 삼양 육개장 사발면도 가지고 왔다. 손님들이 먹는 물부터 사발면의 뜨거운 물까지 모두 손님이 알아서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나름 재미있는 구석도 있다. 마치 미래의 사람 만나기 힘든 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집의 김밥은 밥보다 속재료가 엄청 많이 들어간 것이다. 김밥이라기 보다는 김야채햄에 밥을 넣은 것이라 하는 것이 더 맞는 말 같다. 고추냉이 김밥도 그냥 봐서는 뭔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그니쳐 김밥보다 오이나 상추같은 야채가 더 있는 비주얼이라고 할까? 하지만 먹어보니 고추냉이의 강렬한 펀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고추를 얇게 썰어 넣은 바로 옆의 퍼런 것이 모두 고추냉이었다. 코가 뚫리고, 머리가 띵하면서 콧속이 센 바람이 들어간 것같은 자극이 왔다. "와 대단하다~" 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건 절대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다.
육개장 사발면이 없었다면 이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그니쳐 오토 김밥은 아주 무난했다. 속 재료도 탄탄하고, 자극적인 맛도 없이 그저 맛난 김밥이었다. 소풍 때 가지고 가면 다른 집 김밥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다. 다들 아는 맛이지만 김밥에 사발면 국물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은 배가 된다. 뻑뻑함도 줄어들고, 사발면의 양념이 김밥에 추가된다. 어릴적 부터 아주 많이 먹던 조합이다. 이른 아침 이렇게 목이 메이는 김밥을 인스턴트의 대명사 사발면과 먹는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솔직히 그 어떤 해장음식보다 훌륭했다. 정말 제대로 먹는 아침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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