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장안동이었을때 용두동을 자주 지나갔는데 그 때마다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연출되는 집을 보았다. 용두동 사거리 부근에 있는 쭈꾸미 집이었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퇴근 무렵이 지날 때는 아예 줄이 장사진을 이루는 것을 거의 매일 보았다. 한국 사람들의 매운 맛 사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줄을 서서 먹는 집은 흔치 않다. 바로 그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용두동 쭈꾸미가 체인 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같은 이름의 쭈꾸미 식당이 송우리 먹자골목 근처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용두동을 지나면서 보기만 했지 그 맛이 어떤지 들어가 보진 못했다.
새로 생긴 집답게 실내는 엄청 깔끔했다.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긋한 나이의 부부가 새로 식당을 오픈한다는 것이 요즘엔 참 보기 드문일인데 어려운 일에 과감하게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가 찾아간 시간이 오후 5시쯤이었기 때문에 식당안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하긴 저녁 술 한 잔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쭈꾸미 생각이 간절했다. 평소 매운 것을 잘 먹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낙지나 쭈꾸미는 그렇게 생각날 때가 있다. 이맘때가 그랬다. 하지만 주문 과정에서 제일 매운 맛을 달라고는 하지 못했다. 그건 좀 무섭기 때문이다.
주인장의 말로는 중간맛도 왠만큼 매운 맛이란다. 보통 사람들은 땀 깨나 흘리면서 먹는단다. 과연 우린 그 맛에 도전하여 이겨낼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렇게 쭈꾸미가 나오길 기다렸다. 평소 우리가 자주 갔던 잘빠진 쭈꾸미 집의 비주얼과는 사뭇 다른 모양의 쭈꾸미가 나왔다. 잘빠진 쭈꾸미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쭈꾸미 집엔 쭈꾸미 외에 야채가 엄청 들어가는데 여긴 야채는 아예 없고 오로지 쭈꾸미만 시뻘건 양념에 듬뿍 빠져 나왔다. 보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맺힐 것 같은 엄청난 비주얼이었다.
중간 맛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매울 것 같아서 떡사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중에 넣으라는 콩나물도 투입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매운맛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별 다른 야채없이 쭈꾸미만을 볶으니 온통 쭈꾸미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왜 그런지 몰라도 쭈꾸미는 상추보다는 깻잎에 싸 먹는 것이 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이집의 장점중에 하나는 카레 소스를 준다는 것이다.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카레소스와 매운 쭈꾸미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매운 양념을 잘 입은 떡사리는 떡볶이로 변신하여 젖가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떡과 쭈꾸미와 콩나물의 박자가 아주 잘 맞을 때 쯤이면 드디어 쭈꾸미들은 뱃속으로 모두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참 아쉽다. 낙지도 쭈꾸미도 많이 집어 먹은 것 같은데 먹고 나면 뭔가 덜 먹은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이런류의 음식들이 모두 그런가 보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볶음밥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렇지 우리에겐 아직도 볶음밥이 남아 있었지... 매콤한 양념과 쭈꾸미가 혼합되어 볶아진 마지막 볶음 양념은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자 마지막 보루같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감자탕이든, 삼겹살이든, 곱창이든 넓은 팬에서 구워 먹는 음식들은 모두 볶아 버린다.
거기에 치즈 솔솔 뿌리고 먹으면 참~ 그 맛이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이건 술안주나 저녁밥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뭔가 새롭고, 경이로운 맛이라 하겠다. 혹자들은 이런 맛을 보기 위해 앞에 등장한 메인 재료들을 모두 제끼고 오로지 볶음밥에만 충실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아무튼 소자 두 병으로도 부족한 아주 만족스런 저녁이나 안주였다. 가성비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이런 집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무래도 종종 오게 될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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