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회의를 마치고 나면 함께 한 위원들과 식사를 하곤 한다. 모두 명예직으로 생기는 것이 없는데도 거의 매달 회의에 빠지지 않고 나와주는 고마운 분들과 식사를 하고 그 중에서 다시 맘이 맞는 사람들과 2차로 한 잔 더 하러 가기도 한다. 이날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회의가 이어졌고, 그래서 더욱 식사와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했다. 저녁을 닭볶음탕으로 든든하게 챙겨 먹었는데도 이렇게 추운 겨울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이날의 회의가 내게 갈증을 일으
켰나보다.
호병천 변에 있는 멘토르는 이렇게 2차 생각이 날 때 자주가는 식당 겸 호프집이다. 점심 때 들러 식사를 할 때도 있지만 역시 이곳은 술맛이 좋은 호프집 느낌이 강한 곳이다. 시청에서 걸어서 몇 분 안 가도 되는 지근거리에 있고, 이곳 주인 역시 친분이 있는 분이라 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옮겨지는가 보다. 이날 2차는 네명이 합류했다. 원래 한 사람이 더 와야 했지만 집에 일단 들어간 사람을 다시 불러 내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가능성도 아주 낮은 일이다. 이 역시 현대를 사는 남자들의 조금은 서글픈 자화상일까?
암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생맥주와 골뱅이 무침을 주문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호프집에서 다른 안주를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나는 거의 늘 골뱅이다. 그래서 골뱅이 무침을 잘하는 곳은 아무래도 더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여기처럼 말이다. 커다란 피쳐잔 하나와 깔끔해서 눈이 다 부신 하얀 접시에 담겨 나온 골뱅이가 너무나 반가웠다. 예전에 피쳐 잔을 하나씩 들고 술먹기 내기를 한적도 있었다. 다 부질없는 미친짓이지만 당시엔 왜 그리 진지했는지 모른다. 그런 기억은 아마도 젊은 시절의 자신감이나 치기어린 돌발 행동 같은 부질없는 것일게다.
이런 조합은 사실 술꾼이라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것이고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이런 조합의 음식을 마다할 술꾼은 없을 것이다. 우리도 커다란 피쳐 잔을 운동하듯이 들고 서로에게 술을 권하며 한마디에 한잔씩 홀짝거리기 시작했다.손이 바빠지는 순간이었다. 이집의 골뱅이 무침은 달달하고 새콤하면서 적당한 맵기까지 아주 안성맞춤이다. 거기에 겨울엔 친해지지 않는 싱싱한 채소들을 함께 먹으니 뭐 비록 술잔을 기울이는 간단한 자리이지만 몸에도 좋긴 할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좋은 마음으로 즐겁게 먹으면 다 약이 된다고... 이것이 약이다 생각하고 먹기로 했다.
사진에도 있지만 기본 안주로 옥수수튀김과 과자 그리고 석기시대라는 쵸콜릿이 나온다. 저 석기시대 쵸콜릿을 보면 큰 아들놈 사주던 생각이 난다. 어릴적 우리 큰애는 저 석기시대 쵸콜릿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내가 몇 개 뺏어 먹기라도 하면 눈물을 보이며 감추기까지 했었다. 이젠 그 아들이 군대를 가려하니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그래서인가 나도 집에선 전혀 쵸콜릿 같은 음식에 관심도 없다가 이렇게 나오면 제법 집어 먹게 된다. 쩝!
사실 작정하고 먹으면 남자 네명이 접시에 담긴 골뱅이를 먹는데 5분도 안 걸릴 것이다. 하지만 우린 안주로 먹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참 이 사람들이 입에 맞았는지 내가 몇 점 먹지도 않았는데 자꾸 골뱅이가 줄어들어 갔다. 음 이러면 전쟁인데...목까지 이런 말이 나오려고 했다. 거 술 한 잔에 한 젖가락씩 먹읍시다. 큭큭 아무튼 맛있고 즐겁고 시원한 2차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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