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옛 지명이기도 한 충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가장 통영스러운 음식이 충무김밥이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것이 김밥이지만 충무 김밥은 정말 통영에만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호불호가 가장 많이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누구는 별 맛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통영을 대표하는 맛이라 극찬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와 비슷했다. 하지만 통영에 왔다면 아무리 취향이 아니라 해도 먹어봐야 한다. 적어도 한 번은 현지에서 먹고 나서 평을 하더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이날 아침은 일부러 충무김밥집을 찾아 나섰다. 숙소 근처만 해도 수 십개의 충무김밥집이 있었다.
눈에 보기에 혹 하는 집이 있어 가게 되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집이란다. 그놈에 언론이 뭔지... 그 문구가 신경이 쓰여 다른 집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매스미디어의 무서운 힘이다. 막상 들어오니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주인장이 한창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을 보니 김밥을 달라는 것이냐며 부리나케 주방으로 들어갔다. 별다른 메뉴도 없는 집인지라 우린 머릿수대로 충무김밥을 주문했다. 여기서는 달리 뭘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셈이다. 조금 기다리라면서 주방으로 간 주인장은 이내 김밥 세트를 들고 나왔다. 하긴 충무김밥이 만드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는 음식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나온 충무김밥은 참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참 단촐하다. 어부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갑작스래 만든 것이 유래라는 말이 실감나는 비주얼이다. 그냥 날 김에 밥을 말고, 냉장고에 있던 석박지와 오징어무침, 그리고 차갑게 식은 어묵무침을 주면 되는 것이다. 김밥도 흔히 우리가 먹던 김밥처럼 참기름을 넣고 섞는다던지 하는 군더더기가 없는 단지 하얀 쌀밥을 말아 놓은 것이다. 꼬마김밥 비슷한 모양이지만 속엔 아무것도 들어간 내용물이 없다. 밥을 김과 함께 먹으면서 차게 식은 반찬을 함께 먹는 밥상인 것이다. 우리가 식당이 아니라 배위에 있었다면 단연 이해가 가는 세트구성이다.
하지만 심플 이즈 베스트 라고 하지 않던가...단순하면서 너무나 단촐한 이런 음식이 한 번 빠지면 그 담백함 때문에 다른 화려하고 양념이 많이 된 음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법이다. 아마도 그런 중독성 때문에 충무김밥이 아직도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한다. 아침부터 작은 된장국과 함께 목이 메어지는 김밥을 먹고 있노라니 조금은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일 인분에 6,000원 짜리 저렴한 밥상이지만 도무지 이걸 왜 돈을 내고 사 먹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일행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래도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 건너편 주인장이 작업하던 테이블을 보니 엄청난 양의 김을 자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족히 수 백인분은 되어 보임직한 양이었다. 과연 저렇게 많은 양의 김밥이 하루에 나가는 것일까? 금새 눅눅해지는 김의 특성을 생각할 때 분명 오늘 자른 김을 몇 날을 두고 팔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통영 사람들이 참 충무김밥을 많이들도 먹는 것 같다. 먹다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단촐하면서 편리한 김밥은 그냥 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젠 아침으로 집에서 충무김밥을 만들어 먹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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