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온천을 간다는 것은 나름의 운치를 즐기는 일일 것이다. 젊을 때야 별로 그런 계획을 세우지도 않겠지만 이젠 그게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야 사실 목욕탕 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답답한 수증기와 시야를 흐리는 뜨겁고 무거운 공기의 탕안이 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도 그닥 좋지 않다. 그런데도 이번 휴일에는 일부러 온천으로 가기로 했다. 온천을 좋아하는 마눌의 의견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니 한 번 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충주호에서 유람선도 탈 겸 수안보로 길을 잡았다.
하지만 충주호와 온천보다 사실 더 기대가 된 것은 뀡요리였다. 아주 오래전 친구와 양주 어디에선가 먹어 봤던 뀡 사브사브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뀡고기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평소 즐겨먹지 못하는 음식이 바로 뀡이다 보니 내 기대는 무척 컸다. 갈 때는 왜 수안보에 뀡 요리집이 많은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말로만 들었다. 이곳에 유난히 뀡 관련 음식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와서 보니 원래 예전부터 이 근방에 야생 뀡이 정말로 많았기에 포수들이 가을부터 진을 치고 사냥을 했었단다. 여기서 잡은 뀡을 임금님께 진상드리기도 했다니 뀡의 고장이 맞다. 이젠 보호조류가 되어 잡을 수 없고 식용으로 사육한 뀡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우리네 전통적인 음식에는 자주 등장하는 뀡을 평소 정말 구경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6만 원을 내면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8가지의 뀡요리가 코스로 나온다. 여기서야 이런 구성이 아주 익숙한 것이겠지만 우린 처음 먹는 것이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그렇게 뀡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옆 테이블에 우리 아버지 연배쯤 되어 보이는 노인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면서 식사와 술을 마시던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마눌의 얘기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인들 몇 분은 보청기를 끼고 있었단다. 자신의 말이 잘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소리치듯 대화를 했던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주변의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마치 갓난 아기가 우는 것처럼 자신들의 대화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과거 우리네 전통으로 보면 지혜롭고, 경험이 많으며, 마음이 넓고,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것이 노인이라 했는데 왜 요즘엔 노인들이 사회에서 더 멀어지는 존재처럼 되어 가는 것인지 안타까웠다.
복지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시대적인 흐름이라 하기엔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현대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신지식과 기술에 능한 사람일텐데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 시대의 노인들은 과거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대접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경험과 사회생활의 노련미는 분명 다른 후진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텐데 그런 부분 우리가 활용을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뀡고기 사브사브였다. 역시 뀡요리하면 이것이 대명사 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과연 맛이 어떨까 무척이나 기대하며 먹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기억하는 그 야들야들하고 고소한 뀡고기 맛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생고기가 아니라 냉동 고기인 것 같았다. 하긴 수급이 잘 안 되면 이렇게 냉동한 고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기대와 달라 실망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담백한 뀡고기 특유의 식감은 살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번째 요리는 뀡 육회라고 했다. 소고기 육회처럼 부드럽고 씹는 맛이 좋았지만 양념이 좀 과하다 싶게 단 것이 내겐 좀 부담스러웠다. 육회니까 어느 정도는 달아야 하겠지만 고기 자체의 맛을 음미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아쉬웠다.
사브사브 고기를 고추냉이 양념 간장에 찍어 먹으면 마치 회를 먹는 것 처럼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다. 다음 메뉴는 뀡고기 만두였다. 이것도 너무나 유명한 음식이니 안 먹어 볼 수 없다. 나는 이 만두가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다. 만두도 바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서 냉동에 넣었다가 주는 것이라 좀 바로 해먹는 그런 식감은 아니었지만 뀡고기 특유의 향과 고소함이 그대로 들어 있어 몇 개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이어 나온 것은 뀡고기 탕수였는데 이 양념은 중국집의 그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주방장은 중국요리를 해도 맛이 좋은 요리들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정도로 튀김이나 볶음은 실력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안주로 먹기 좋아 보이던 뀡 근위 볶음도 괜찮았다. 닭과 식감이 거의 비슷했는데 솔직히 이것이 뀡이라 말해주지 않으면 닭 근위 인줄로 착각 할 것 같았다.
슬슬 배가 불러 오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그런 나의 약점을 노리고 치고 들어 오듯 바로 음식을 또 내왔다. 이번엔 뀡불고기라고 했다. 뀡고기는 살이 너무 부드럽기 때문에 이렇게 불로 익히는 요리들은 대부분은 살코기가 아니라 근위나 내장 부위를 사용한 것 같았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참 괜찮았다. 사실 너무 달아 남겨 두었던 육회를 여기 넣어서 같이 익혀 먹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맛이 더 잘 어울렸다. 역시 나는 참 단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 맞다.
그리고 중국요리처럼 보이는 뀡고기야채 볶음을 내왔다. 이 요리는 중국요리의 딱 고추잡채 맛이랑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조그만 꽃빵을 같이 내왔다. 이 부분에서 도저히 배가 불러 꽃빵을 먹지 못하고 그냥 볶음 뀡과 야채를 먹었는데 역시 볶음류에 대한한은 이곳의 주방장이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맛이 좋았다.
드디어 마지막 요리는 매운찌개였다. 마치 오리 고기를 구워 먹으면 나오는 오리탕 같은 느낌의 뀡탕이었다. 거기에 보기에도 탐스러운 굵은 우동면을 넣어 준다. 평소 내가 얼마나 우동을 좋아하던가? 하지만 이건 정말 그림의 떡이었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너무나 배가 불렀다. 마눌도 형편은 비슷해서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우린 이날 뀡고기로 단백질 제대로 보충한 셈이다.
6만 원이라는 가격이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순 없지만 구성면에 비하면 좀 내실이 약하지 않나 싶었다. 차라리 오리고기처럼 그냥 고기를 구어 먹거나 백숙처럼 끓여 먹으면 안 될까?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퓨전으로 만들어 스테이크나 파스타 처럼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전통 재료라고 꼭 전통 요리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아무튼 특이한 맛과 배부른 양으로 즐거운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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