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의 외식 메뉴가 다양한 것 같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나른하고 여유있는 휴일 오후 점심으로 무엇이 가장 적당할까 생각해 봤는데 온통 국수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국수도 여러 버전이 있지만 이날은 비도 내리고 뭔가 속을 뜨끈하게 채워줄 국물이 필요했다. 국수와 뜨끈한 국물이라면 역시 칼국수일 것이다. 요즘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한듯 칼국수집이 여기 저기 많이 생겼다. 결국 사람들의 취향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양주시 삼숭동의 '봄날 칼국수'였다. 이집은 지나면서 자주 보았던 곳이다. 새로 지은 건물 2층에 있어 눈에 잘 띄였다.
새 건물에 새 인테리어로 이집의 첫 인상은 엄청 깔끔하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과연 여기가 칼국수 집인지, 카페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 칼국수집이 맞다. 보통 칼국수 집들은 어떤 주재료를 사용하는 메뉴판이나 간판에 써 있다. 예를 들면 사골칼국수, 해물칼국수, 바지락칼국수 등등 처럼 말이다. 손님들은 밖에서 이런 재료를 보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면 들어 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집은 그런 표시가 없다. 그러니까 그냥 칼국수인 셈이다. 나중에 먹고 나서 보니 일종의 혼합 국물인 것 같다. 멸치 냄새도 나고, 디포리나 명태 같은 맛도 나고, 약간은 고기 냄새도 난다.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 제대로 된 조합의 맛을 낸다면 그것이 더 내공있는 깊은 맛일 것이다. 일단 주문해야 했는데 칼국수만 먹기가 그래서 콩국수와 만두도 시켰다. 처음 오는 곳이니 다양한 맛을 보고 싶었다. 만두 세알에 3,000원 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메뉴가 있다. 솔직히 양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칼국수와 함께 왕만두를 5~6개 씩이나 먹기가 부담스런 것이 사실이다. 만두 세알에 3,000원이라면 한알에 1,000원이라는 부담없는 가격이 된다. 만두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아주 맘에 드는 맛이었다. 너무 달지도 않고,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고기맛이 살아 있는 맛난 만두였다.
드디어 메인 디쉬인 칼국수와 콩국수가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국수보다 콩국수가 엄청 고소하고 진하고 정말 맛이 좋았다. 이런~ 칼국수는 고기 고명이 올라가 있었다. 역시 국물에 고기를 넣기는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주 복합적이고 오묘한 맛의 국물이었다. 어디서 먹어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도, 아닌 것도 같고 아주 희안한 맛인데 조합이 훌륭했다. 비슷한 맛들을 내는 칼국수집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기는 할 것이다. 콩국수는 완전 압권이었다. 어찌나 국물이 걸쭉한지 콩죽인줄 알았다. 국물이라고 하기 보다는 엑기스라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법한 농축된 콩물이었다.
칼국수는 직접 제면을 한다고 써 있었던 것 같은데 콩국수는 일반적인 중면이었다. 하지만 중면의 식감이 이렇게 부드럽고, 콩국물과 잘 어울리는지 이전엔 몰랐다. 리뷰를 보니 이집의 겉절이가 매우면서 맛나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겉절이보다 석박지가 더 맛이 좋았다. 적당히 매콤한 것이 칼국수와 아주 잘 어울렸다. 역시 칼국수는 진한 육수와 염분의 맛으로 먹는 것이다. 염분의 과다 섭취가 어쩌고 저쩌고 할 것이라면 칼국수집에 오면 안 된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역시 국물과 면이다. 휴일 오후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든든하고 진한 국물이 오늘의 메뉴 선택도 탁월했음을 보여주는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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