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에 가면 의례 생선회 한 접시 정도는 먹고 와야 제대로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걸 하지 못했다. 다만 그 아쉬움을 물회 한 그릇을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거진항의 소영횟집이다. 미리 답사를 갔다가 자리를 봐 두고 온 곳으로 고성에서 어쩌면가장 유명한 거진항 포구에 있는 횟집이다. 단체를 주로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여기서 함께 간 사람들과 물회를 먹기로 했다. 그래서 만난 동해의 물회는 글쎄... 뭔가 낯설고 보지 못했던 색다른 모양이었다.
거진항에는 여러 횟집이 있다. 아마 과거 거진항이 활발하게 상권이 살아 있던 시절엔 이집들이 모두 성황을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거진항의 쇠락처럼 포구 역시 한산했다. 명태로 유명했던 포구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이 한 두 해 전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변화라 하겠다. 그래도 워낙 이름이 있던 곳이다 보니 우리처럼 과거의 명성을 좇아 찾아 오는 이들이 있다. 거진항에서 다시 시끌벅적하게 고기를 잡고, 경매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아무튼 우린 바다 내음 물씬한 거진항에서 역시 바다가 가득한 한 그릇의 물회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물회의 모습이 마치 소스를 뿌려 놓은 것처럼 걸죽한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물회라는 것이 이런 비주얼이었던가? 이것보다는 물이 더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런데 거진항에서 살았었다는 일행이 원래 거진항의 물회는 이런 모양이 맞단다. 그리고 강릉에서 먹었을 때보다 훨씬 시큼했는데 마치 물 반 식초 반 같았다. 이것도 이 계절엔 이렇게 먹는단다. 안 그러면 재료가 상하기 쉬워 먹는 사람이 탈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글쎄 개인적으로는 너무 시었다. 식초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참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다.
물회는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지만 여긴 소면을 주었다. 걸죽하던 물회 소스는 점점 물로 변해갔다. 나중엔 익숙하게 먹었던 물회의 비주얼이 되었다. 거기에 소면을 말아 먹는 것이다. 들어 있는 문어의 쫄깃한 식감과 시큼한 국수를 먹는 것이 거진항의 물회였던 것이다. 함께 간 일행들 중 일부 사람은 이 물회를 다 먹지 못했다. 너무나 생경한 식감과 그닥 덥지 않았던 날씨 탓이다. 아마 날이 더 뜨거웠다면 다들 후루룩 잘 먹었을 것이다. 단체 예약을 한지라 약간의 전과 물만두가 있어 그나마 간단하게 한 잔 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다음 여정은 통일전망대 안에 있는 금강산열차식당이었다. 사실 식당이라기 보다는 실내포장마차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말 그대로 열차를 개조하여 식당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관광지라는 특성 때문에 약간 가격이 있는 편이었다. 여기가 1박2일에 나온 적이 있단다. 점심은 물회로 이미 먹은터라 과하지 않은 안주 겸 요기거리를 찾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도토리묵이었다. 가격은 20,000원으로 모듬 돈가스 다음으로 비싼 안주였다.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은 탓에 여긴 선불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막걸리 하나와 도토리묵, 그렇게 27,000원을 지불했다.
조금 큰 병이긴 했지만 막걸리 하나가 7,000원이면 싸진 않다. 신사임당이라는 지역 막걸리가 유명한 모양이다. 어딜가나 이 근방에서는 이 막걸리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도토리묵이 조금 작아서 약간 실망했다. 하긴 저것만저 다 먹지 못했으니 뭘 더 바라랴? 싱그러운 봄날 한 낮에 열차식당에 앉아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먹는다는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생각해 보면 여행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이 다이다. 좋은 사람들과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이 봄은 그런 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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