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올라가는 길에 맛있는 막국수를 먹고 가기로 했다. 경주나 진주에서 냉면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내공있는 메밀국수를 먹고 싶었다. 냉면보다는 더 순수하고, 서민적인 막국수가 땅겼다. 춘천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돌아가는 것 같아 가는 길목에 있는 또 다른 막국수의 성지인 여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여주에서 이미 몇 번 맛있다는 막국수 집을 간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유명세를 타는 곳보다 현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정말 동네에 있는 막국수 집을 찾아 가고 싶었다. 그래서 간 곳이 바로 이곳, 여주시 오학, 현암동이라고도 불리는 곳의 동네막국수 집이다.
정말 동네에 있는 막국수 집처럼 아주 조용한 주택가 한 켠에 있는 동네막국수는 현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란다. 아마도 여주 역시 춘천처럼 막국수 집들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현지 사람들이 아끼고 따로 가는 집이 있을 것이다. 춘천에서도 그랬다. 현지 사람들이 많이 간다던 청송막국수 집에 가서 정말 맛나게 먹은 기억이 있다. 아마 이집도 그런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철이 그래서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우리가 갔을 때 식당 안은 무척 한가했다. 과연 여기가 그렇게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어쨌든 왔으니 맛나게 먹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물과 비빔막국수를 주문했다. 늘 그렇듯이... 이집은 냉면집처럼 처음 들어가면 먼저 구수한 고기 육수를 한 주전자 갖다 준다. 아마 손님들이 많이 찾았는데 정말 주전가 한 가득 갖다 주었다. 그 맛이 고소하고, 진한 것이 괜찮았다. 보통 막국수는 동치미 국물을 주로 사용하지만 이렇게 고기 육수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더 진하고 고급진 음식이 되는 것이다. 블로그 리뷰를 보면 이집은 양이 많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우린 다른 메뉴는 시키지 않고, 일단 막국수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말이 맞았다. 나온 막국수는 정말 양이 많았다. 보통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좀 아쉽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조금 남기기까지 했다. 겨울이라 더 많이 준 거 같기도 하고 암튼 다른 집들에 비해 분명 많은 양이었다. 물 막국수는 좀 전에 맛 본 육수처럼 고기 국물이 진한 평양냉면 같는 맛이 났다. 이건 막국수라기 보다는 평양냉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비빔은 참기름 향이 진하게 배어 있는 전형적인 비빔 양념장 맛이 좋았는데, 이것 만큼은 함흥냉면 같은 맛이 아니라 뭐랄까 칡냉면 비슷한 맛이라고 할까 암튼 좀 특이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물 보다는 비빔이 더 맛이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막국수 매니아라 해도 이런 계절에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차가운 육수를 들이키니 몸 속이 온통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 겨울에 얼음 동동 막국수는 무리인가 싶다. 하지만 어쩌랴 입에선 자꾸 들어 오라고 재촉을 하니 말이다. 이런 맛이 또한 한국 사람들의 막국수 사랑이 아니겠는가? 어릴적 생각해 보면 이런 비슷한 광경 자주 겪었었다. 어머니는 추운 겨울 밤 항아리에 들어 있는 얼음 떠 있는 동치미 국물을 떠 오셔서 국수와 말아 주시곤 했다. 이것이 그것과 비슷한 상황 아니겠는가?
이 계절이라 비빔 막국수가 더 입에 잘 붙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 입맛엔 그랬다. 비빔 막국수는 어디서도 잘 먹어 보지 못한 묘한 맛이었다. 다만 두 국수 모두 면은 조금 아쉬웠다. 100% 메밀이 들어간 알싸한 메밀 향을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봉평 막국수 같이 체인점들이 파는 막국수 면처럼 뭔가 첨가된, 그래서 농도와 찰기를 맞춘 면이라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하긴 이런 면이 더 많긴 하다. 100% 메밀가루로만 면을 만드는 곳이 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육수와 비빔 양념은 정말 괜찮았다. 아마 그래서 현지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모양이다. 역시 내공있고, 오랜 세월 보낸 노포의 힘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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