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하게 조개찜으로 먹고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맥주집을 찾아 나섰다. 함께 간 동생 말로는 여길 전에 왔었다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그렇게까지 취하지는 않았을텐데 아마 다른 뭔가 심각하게 집중해야 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호프집들은 내가 분위기를 기억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래서 다시 찾아 가기로 했다. 이름하여 세계 맥주를 판다는 고릴라 라는 호프집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술로 그냥 다른 안주와 함께 마시지만 외국에선 음료처럼 안주없이 맥주만 마시기 때문에 그렇게 다양한 맛을 내는 맥주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요즘엔 우리 맥주보다 세계맥주를 판다는 집이 더 끌린다.
민락동을 자주 나왔더니 이젠 그 거리가 눈에 들어 온다. 이집은 상대적으로 한가한 구역에 있다. 물론 이 일대가 엄청 큰 먹자골목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사람들로 붐비는 곳보다 이런 곳이 더 낫다. 맥주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여기도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눈에 띄였다. 마치 서양의 팝 같은 그런 분위기? 가 보지도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아무튼 이런 분위기 나름 좋아한다. 치즈나쵸를 함께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해서 코로나 맥주를 주문했고, 칭다오가 좋다는 제수씨는 그 맥주로 주문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 레몬 한 덩어리가 주는 맛은 남 달랐다. 코로나의 향과 함께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사실 나쵸는 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는 무척 좋아한다. 저녁을 잔뜩 먹고 왔으니 다른 안주는 손이 갈리 없지만 나쵸는 그래도 짭짤하니 다른 달달한 것보단 괜찮았다. 대부분의 호프집엔 젊은이들 일색인데 여긴 나름 좀 낫살 먹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그런 집이었다. 맥주로 아주 취하도록 달릴 것 아니라면 이런 카페같은 맥주집에서 한 두 병 먹고 가는 것이 커피집보다 오히려 나은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한가롭게 앉아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여유는 참 소중한 시간이다. 앞으로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는 게 뭐 있나? 아둥 바둥 뭘 그렇게 대단한 것을 얻겠다고 앞만 보고 달려가겠는가? 올 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뭔가 또 다른 결심을 해야 할 일이 제법 많아 보이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동안 참 내가 살아 왔던 시간들에 비해 너무 편하고 너무 안정되고 지루할 정도로 변화 없는 삶을 살았다. 다시 한 번 힘을 내 봐야지 제법 나이를 먹은 지금이지만 이 모험심과 도전정신은 식지를 않으니 이것도 병일까? 그래서 이 시간이 더없이 편하고 즐거웠다. 이 동생과도 뭔가를 많이 해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득 맥주를 마시다 벽에 붙어 있는 봄베이라는 소주에 물을 타서 먹는 일본식 희석주가 보였다. 마치 진토닉 처럼 그렇게 소주에 물을 타서 먹는 것인데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들 먹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봄베이라는 상표는 영국의 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진토닉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진토닉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맛이 아주 깔끔했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도 맘에 들었고, 앞으로 이렇게 진토닉이 보이면 많이 즐겨야 겠다. 가만히 보면 내가 처음 진토닉을 마셨을 때는 이걸 무슨 맛에 먹을까 희안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맛이 너무 좋다고 느끼니 술도 정말 나이를 먹고 경륜이 쌓여야 맛을 알게 되나 보다.
맥주집은 거한 안주나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별 특징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에선 코로나와 봄베이 덕분에 강한 인상이 남았다. 아마 민락동에서 다시 2차를 하게 된다면 봄베이 때문에 다시 찾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기억이 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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