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사는 친구 덕분에 서종면 일대를 이리 저리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근처가 외지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지 저녁무렵이 되면 대부분의 식당이나 가게들이 문을 닫아 버렸다. 저녁 8시만 되어도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더구나 술 한 잔 더 마시자는 우리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친구 말이 큰길에서 조금 돌아 들어간 곳에 정통 일본식 주점이 있단다. 즉, 이자카야가 있다는 말이다. 더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우린 그쪽으로 향했다. 주점만으로도 고마운데 이자카야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정말 오랫만에 만난 친구는 지갑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고, 이자카야에서는 제대로 된 사케를 먹어야 한다며 슈호 준마이긴죠 핫탄이란 술을 주문했다. 물론 값이 싼 술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맛나고 입에 착착 감겼다. 하지만 이 사케를 고른 것이 단점도 있었다. 소주를 제법 마시고 온 터에 사케를 마시니 후반부에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사케는 그 자체로는 거의 취기가 오르지 않는데 다른 술을 마시고 난 뒤에 먹으면 파괴력이 엄청 상승한다. 이날도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기본 안주도 일본식이었고, 안주 대부분이 정통 일본식이라 했다. 그래서 주문한 첫 번째 안주는 아귀간이었다. 보통 아귀간은 아귀찜이나 탕으로 먹을 때 안에 넣어 끓여 먹는 것이 우리네 방식이지만 일본에서는 명란젓처럼 젓갈을 만들어 먹는단다. 그런데 아귀간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아 냄새도 나고 씁쓸한 맛이 나서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집의 아귀간은 아주 훌륭했다. 말수 적은 주인장은 일본식 요리를 제대로 수련하고 온 실력자 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맛은 서울 강남에서도 맛보기 힘들다는 칭찬이 난무했다.
실제 사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안주였다. 저녁을 먹고 온 사람들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우면서 깊은 맛이 나는 제대로 된 일식 안주였다. 다음 안주는 명란이었다. 일본식 명란젓은 덜 짜고 우리네 반찬과는 조금 다른 식감을 보이는데 이집의 명란젓은 우리식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짭짤하다 보니 안주로는 더 없이 훌륭한 아이템이었다. 타다끼처럼 겉을 살짝 그을린 것도 신의 한 수 였다. 탄 맛과 향이 나면서 안은 촉촉하니 짭짤한 맛이 아주 좋았다. 이런 좋은 안주들 덕분에 사케를 폭주하 듯 마셨고 그 결과는 블랙아웃이었다.
그러고도 뭐가 부족했는지 다시 하나 더 시킨 안주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시사모 구이였다. 이렇게 작은 생선이 이렇게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시사모는 일식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안주라고 생각한다. 사실 시사모 구이를 먹을 무렵엔 다소 과한 알콜 섭취로 맛이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집들과 달리 조금 더 구운 듯한 맛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약간 탄 것 같은 구이에서 맛볼 수 있는 고소함의 극치가 있었다. 이러니 이집이 요리로 승부를 거는 집이란 말을 듣는가 보다. 정말 맛있고, 만족스러운 2차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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