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운상가에서 일했을 때 이집을 참 많이도 갔었다. 이집은 냉면을 좋아하는 우리 내외에겐 많은 추억과 알싸한 맛으로 늘 입가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집이기도 하다. 가끔 우리는 당시 참 어려웠지만 이집을 찾아가 마음의 위로를 얻곤 하던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꼭 다시 가보자고 했었다. 그만큼 마음의 힐링이 되는 곳이다. 아주 어릴적 아버지 손을 잡고 갔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냉면하면 난 자신있게 종로의 이 냉면집을 이야기 한다. 이곳에 가기 위해 오랫만에 우리는 그 막히는 주말 서울 시내를 관통하여 종묘 주차장으로 갔다.
원조라는 간판을 큼직하게 달아놓은 두 집이 있는데 예전엔 주로 곰보냉면집을 많이 갔었는데 오늘은 그 옆에 있는 함흥냉면집을 가 보기로 했다. 둘 다 원조라는데 솔직히 어디가 더 오래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종묘 주차장에서 신한은행을 끼고 들어가면 나오는 골목안 이 냉면집들은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한 것 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 아직도 이렇게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단한 냉면 한 그릇이라고는 해도 과거 이집의 가격은 좀 부담스러웠었다. 이날 가보니 물냉면도 비빔냉면도 9,000원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것들의 가격이 올라 이젠 그렇게 부담스럽다고 하기 뭐한 가격이었다. 아무래도 냉면은 면 요리중에 비싼 축에 드는 것이니 이정도 부담은 해야 할 것이다. 오래된 주전자에서 옆 테이블 사람들과 함께 리필해서 먹는 육수도 그대로였다. 이 육수가 고기국물이라며 더 먹으라고 강권하시던 어머니 얼굴도 떠올랐다. 당시엔 그런 고기국물도 귀했던 것 같다. 조금은 짠 맛이 강해 많이 마시진 못했지만 그래도 고소하고 구수한 국물은 일품이었다.
마치 터미널에서 표 내주는 곳 처럼 생긴 저 곳에서 냉면들이 나왔다. 주방의 모습이며 종업원들의 움직임이 정말 과거 그대로 였다. 아내는 회냉면을 나는 물냉면을 주문했다. 아내는 늘 냉면하면 회냉면이다. 반면 나는 냉면하면 꼭 물냉면을 시킨다. 역시 냉면은 차고 달달한 저 국물이 생명 아닌가? 하지만 이날의 회냉면은 그런 내 마음을 비웃는 것처럼 비주얼이 너무 좋았다.
사실 물냉면보다 비빔냉면을 만들기가 더 어려운 것 아닐까? 저 양념이 만들어내는 맛의 조화를 따라하지 못해 2류가 되는 것 아닌가? 암튼 나의 물냉면도 맘에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냉면 면발이 가늘고 탱글거리는 것이 역시 명불허전이구나 싶었다. 조금은 진하다 싶은 물냉면 육수를 한 모금 마시니 그 시원함과 구수함이란...역시 두시간 차을 몰고 온 보람이 있었다. 아니 이집이 이렇게 양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양도 꽤나 많았다. 일단 아내는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성공적인 방문이라는 사인을 주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의 오늘 선택이 잘 되었다고 사인을 보냈다.
너무 차가워서 딱딱한 느낌마저 주는 고기 한 점까지 양념이 배어 있어 잡냄새도 나지 않고 식감이 좋았다. 냉면 면발이 어찌나 질긴지 이빨을 이리저리 굴려야 했다. 다 먹고 나니 포만감이 밀려 올 정도로 양도 많았다. 이곳을 아는 사람들은 나처럼 세월이 지나도 꼭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과거의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이날의 만찬이 그랬다. 아내와 냉면을 먹고 청계천 변을 걸으며 우리는 주말 오후 꼭 해보고 싶었던 서울 나들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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