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추운날 냉면을 먹어야 진정한 매니아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맛은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 그 차가운 면을 먹게 되면 몸이 추워지고 덜덜 떨게 될지도 모른다. 실컷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을 맞고 기껏 생각한 것이 냉면이라니 정말 못 말리는 식성이다. 아무튼 그래서 우린 조금 더 차를 몰고 속초 쪽으로 향했다. 언젠가 TV 먹는 프로그램에도 나왔다는 그 유명한 속초의 이조면옥에 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집에 냉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갈비탕이나 육개장 같은 겨울용 메뉴도 있다. 하지만 식당 이름이 일단 면옥 아니던가? 당연히 우리는 냉면을 주문했다. 다른 곳보다 조금 싼 8,000원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집은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물냉면을 달라고 했더니 양념이 된 면이 나온 후에 거기에 육수를 부어 먹으면 된단다. 마치 막국수 처럼 그렇게 말이다. 이런 구분이 없는 집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점심 시간이 좀 지난 때 였는데도 실내는 손님들도 꽉 들어 차 있었다. 역시 인기 있는 맛집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냉면은 맛을 내기가 참 어려운 음식이다. 그렇게 차가운 육수에 면을 먹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하지 않던가? 과연 이집의 내공은 어떨지 기대가 컸다.
얼마간 기다리니 드디어 우리의 목표인 냉면이 등장했다. 면의 색이 조금 진한 것이 눈에 띄였고, 튼실하게 명태와 소고기가 고명으로 들어 있었다. 양념의 색이 하도 강렬해서 매울 것 같지만 실제 먹어 보면 그렇게 자극적이진 않았다. 고기 외에도 여러 야채와 배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저 얼음이었다. 냉면이라는 아이템에 충실하기 위해 밖이 영하의 날씨라 해도 여긴 얼음을 넣어주는 저 충실함... 그 얼음을 봤더니 다시 몸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방바닥은 뜨끈했는데 계속 몸은 떨렸다. 그래 이런 맛에 겨울 냉면을 먹는거지 싶었다.
나는 좋아하는 물냉면으로 만들어 먹기 위해 차가운 육수를 들이 부었다. 마눌은 취향대로 조금만 부어 비빔냉면으로 먹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긴 비빔이 더 맛이 좋은 것 같았다. 물 냉면은 특유의 고소하고 진한 육수의 맛이 좀 덜났다. 하지만 양념은 과하지 않고 좋아서 비빔으로 먹는 것이 나았다. 물론 면은 냉면 면이 가지고 있어야 할 기능적인 부분을 모두 소화하고 있었다. 쫄깃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한 탄성을 가지고 있고, 쌉쌀한 메밀의 맛도 났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냉면을 육수나 양념으로도 먹지만 역시나 메밀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면을 먹기 위함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집의 냉면은 분명 합격점이었다.
그리고 고명으로 들어간 명태무침이 꽤나 고급스러웠다. 명태만 더 먹고 싶을 지경이었다. 입안이 온통 헐어서 자극적은 것을 거의 먹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의 삭힌 명태는 너무나 좋았다. 명태만 따로 모아 놓고 안주로 팔면 그것도 잘 팔릴 것 같았다. 차가운 면발과 얼음까지 동동 떠있는 육수를 들이키니 처음 예상대로 몸이 한층 더 추워졌다. 실내가 조금 덥다 싶을 정도로 난방을 잘 하고 있는데도 몸이 떨렸다. 얼음도 다 먹을 때까지 거의 녹지 않았다. 으 정말 추운 겨울이긴 한가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 같은 먹거리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나 보다. 앞으로 속초를 가면 이젠 의례 이집부터 오지 않을까 싶다. 냉면을 제대로 하는 집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다. 이 겨울을 더 겨울답게 만들어준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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