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오감 치유를 할 수 있는 공간, 포천시 신북면 힐데루시 자연치유

맛있고 행복한 곳...

by jeff's spot story 2026. 1. 5. 21:23

본문

우리가 이곳을 간 이유는 워크숍을 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워크숍은 강의를 듣거나 체험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통상적인 스케줄이다. 신북면에 있는 힐데루시 자연치유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오감을 치유한다는 곳이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문구가 너무나 맘에 들었다. 과학과 첨단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우리가 치유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다시 자연적인 방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이라는 막연한 명제 속에는 아주 많은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얻은 식물들을 인위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건조한 여러 차들이 우리를 반겼다. 이곳은 공방이면서 간단한 교육도 하는 곳이라 했다. 자연적이라는 말에는 우리가 늘 보던 것들이 그대로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박물관에 진열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자연스러운 식물인 것이다. 그것도 생명이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 나와 함께 호흡한 생명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힐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고, 현재 하는 일이 싫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현대인들은 힐링이 필요하다. 풍요속에 빈곤이라고 우린 모든 물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늘 허전하다고 느낀다.

 

오전의 간단한 강의를 듣고 우리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는 힐데루시의 제대로 된 밥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자연치유라는 말대로 비건을 추구하지만 우리를 위해 연잎으로 구웠다는 등갈비를 준비하는 세심을 보여 주었다. 하긴 여긴 절이 아니니 등갈비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여러 반찬들이 있었지만 평소 먹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같은 밥상이라지만 어찌 이렇게 낯선지 모르겠다. 정성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분명이 뭔가 작용을 한 것 같다. 간도 세지 않고, 인위적인 맛은 일도 없다. 건강하다는 말이 그대로 전해지는 맛이었다. 이런 음식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찔까?

 

어떤 반찬이 특별히 맛있었다는 기억보다는 전체적으로 매우 특이하고 건강한 맛이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늘 보던 같은 재료를 이렇게 다르게 음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월남쌈 같아 보이는 채소를 싸서 빵 사이에 넣어 먹으면 햄버거처럼 된단다. 참 신기하게도 전혀 다를 것 같지만 말 그대로 만들어 먹어 보면 식감이 비슷했다. 이럴수가... 힘든 일을 마치고 뭔가 마구 우걱 우걱 씹어 먹고 싶은 일꾼들에게는 다소 부족하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황송한 음식들이었다. 값이 얼마인지를 떠나 이런 음식은 혼자 먹기가 조금 미안하다. 귀한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싶은 음식들이다.

 

하지만 물질문명이 찌든 입에는 역시나 등갈비가 제일 맛이 좋았다. 역시 남의 살이 맛난 법이다. 호박으로 만들었다는 죽 비슷한 스프도 맛이 좋았다. 그나마 여기서 익숙한 맛이 나는 것들이다. 여긴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오기 힘든 곳이라 평소에 먹기 힘든 것을 수련하듯 먹는 곳이다. 자연치유라는 말이 식사시간에 이렇게 와 닿을 줄은 몰랐다. 그냥 조금은 김치찌개나 동치미 같은 반찬이 그립기는 했다. 하지만 한끼를 이렇게 자연적으로 먹는 자리에서 그 무슨 세속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역시 우리는 익숙한 것, 늘 먹던 것, 입에 맞는 것에 끌린다. 그래서 사람은 먹는대로 간다는 말이 있나보다.

 

신북면의 쌀로 만들었다는 새 모이 만큼의 밥을 국에 넣어 먹는 것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려 주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이다. 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어야 한 끼 제대로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추운 밖의 날씨와 비교되는 안락한 자리에서 자연의 한 자락을 어렵게 입에 물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래서 오늘도 조금이나마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몸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루 하루 결국 우리는 죽어가기 위해 산다지만 이날 만큼은 생명을 하루 정도 더 연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위로를 해보는 시간이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