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그냥 가까운 가평에 가서 차나 한잔하고 오자던 것이 그만 춘천까지 가고 말았다. 춘천에 유명한 막국수 집이 많은 것이야 다 알려진 사실인데, 우린 그렇게 유명세를 떨치는 외지인이 더 많이 찾는 집이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아끼고 애용하는 집을 가고 싶었다. 그렇게 드라이브 하면서 마눌이 고른 집이 춘천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양로에 있는 이 실비집막국수 였다. 이 집 이름을 듣는 순간 가평이 아니라 춘천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약간 밀리는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갑자기 번개로 길을 떠난다는 것이 이젠 낯선 일이지만 그만큼 또 재미가 쏠쏠하다.
춘천에 있는 그 많은 막국수 집들 중에 1967년 1호로 등록을 한 집이 이곳이다. 그 때는 내가 태어 나던 해다. 그러니 내가 산 만큼을 세월을 손님을 맞아 막국수를 팔았다는 말이다. 대단한 세월의 힘이다. 일단 그 자체로 이집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많은 시간을 장사한 집이라지만 아담한 외관과 소박한 실내가 우리를 맞았다. 마치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그대로 남아 있는 추억의 식당처럼 그렇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네게이션으로 왔는데도 찾는데 조금 애를 먹을 정도로 큰길에서 많이 들어가고 전혀 유흥가가 아닌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말 그대로 대를 이어가며 영업을 하는 집이니 그 내공은 장난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실내는 뭐랄까 무술을 대가를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곳에 오면 의례 내가 주문하는 것이 막국수 외에 빈대떡, 그러니까 요새 표현으로 하자면 녹두전이 되겠다. 오리지널 녹두전은 내가 어릴적에 빈대떡이라 불렸다. 그 이름만큼이나 흔한 음식이었는데 이젠 그 고소하고 진한 맛을 보기 힘들다. 이집의 녹두전, 즉 빈대떡은 나의 그런 추억을 제대로 소환해 줄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별 다른 내용물 없이 녹두 본연의 향과 맛이 살아 있는 건강식이었다. 이런 맛을 왜 요즘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것일까? 솔직히 막국수도 좋긴 했지만, 이 녹두전이 정말 좋았다. 감명이었다.
노릇 노롯 고소하고 담백한 녹두전을 먹고 있노라니 우리가 주문한 막국수가 나왔다. 이집도 다른 내공있는 집들처럼 막국수에 비빔과 물의 구분이 없다. 약간의 양념이 되어 나오는 막국수에 육수를 자작하게 부으면 비빔이 되고, 듬뿍 부으면 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참 좋다. 이렇게 메뉴판에 물과 비빔의 구분이 없으면 더 신뢰가 간다. 역시나 이집은 막국수의 전통을 간직한 집답게 메밀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알싸하고 고소한 메밀면이 훌륭했다. 또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막국수 집들은 국수로 치면 중면에 가깝게 다소 굵은 면을 사용하지만 이집은 마치 함흥냉면 집처럼 메밀임에도 불구하고 면이 엄청 가늘었다. 하지만 함흥냉면과 달리 툭툭 끊어지는 면발이었다. 이런 것이 기술이라면 기술일 것이다. 메밀만으로는 찰기가 없어 이렇게 가늘게 면을 뽑기 어려울텐데 여기선 오래 전부터 이런 면을 사용했던 것 같다.
쫄깃한 찰기는 없는데 가늘고 긴 면발이라... 이거 참 신기했다. 주로 비빔으로 먹는 사람도 심심하면서 담백한 이집 육수가 좋았는지 먹다가 중간에 육수를 추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뭐랄까 무리하지 않는 절제미라고 할까? 요즘 시중에 단짠맵이 주류를 이루는 양념들이 많은데 여긴 그런 자극적인 맛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원래 이런 맛을 더 즐겼을지 모르겠다.
어느 날인가 부터 맵고 짜고 단 음식들이 입에 잘 맞는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가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이집의 막국수는 누가 먹어도 부담이 없을 정도의 건강한 맛이었다. 역시 막국수의 세계는 참으로 넓고 깊구나 싶었다. 이렇게 심심하면서 맛이 확실한 육수도 다른 곳에선 잘 먹어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러니 그 오랜 세월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겠지... 춘천으로의 짧지 않은 드라이빙 이었지만 오늘은 제대로 된 수확을 한 셈이다. 참 만족스런 막국수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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